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

[그 기자의 '좋아요'] 강준식 충북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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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식 충북일보 기자

[책] 대통령의 말하기


‘말하기’가 중요한 시대다. 누군가는 대학 입시를 위해, 또 누군가는 기업 면접을 위해 전문 스피치(speech) 학원에 다닌다. 심지어 군에 입대하기 위해서도 면접을 본다니 ‘말하기’의 중요성이 짐작 가능하다.


말하기는 화자(話者)의 성격 등을 파악할 수 있는 가늠자 역할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타인과 대화를 통해 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한다. 지난해 8월 ‘대통령의 말하기’라는 책을 접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의 입’이라 불리던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이 펴낸 책으로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법 등을 다루고 있다.


책에서 본 노 전 대통령의 화법은 남달랐다. 솔직했으며 담대했다. ‘뒷감당은 어쩌려고….’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의 이런 화법은 재임 당시 그를 힘들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정면 돌파의 대가였다. 단적인 예를 들어 ‘키친 캐비닛(kitchen cabinet·식사정치)’ 사건이다. 2004년 1월, 신년 기자회견 도중 노 전 대통령은 기자들로부터 ‘식사정치’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가 여러 정치인을 청와대 관저에 초대해 저녁 식사를 함께하자 비판여론이 제기된 것이다. 당시 그는 기자들의 공세에 미국 제7대 잭슨 대통령의 일화를 소개하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키친 캐비닛’이 미국 대중민주주의 발전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는 팩트(fact)로 말이다.


대중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답변이었을 것이다. 상황은 다르지만,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도 키친 캐비닛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지난해 12월19일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해명하기 위해 이 같은 단어를 선택했다. 다양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해 식사자리를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났는데 ‘최순실’이 그 중 하나라는 뜻이다. 두 대통령은 같은 ‘키친 캐비닛’을 두고 비슷한 답변을 내놓았으나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한 셈이다.


오는 5월9일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5명의 주요 정당 대통령 후보들의 TV 토론회가 한창이다. ‘대통령의 말하기’ 서문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말은 한 사람이 지닌 사상의 표현이다.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 결국, 말은 지적 능력의 표현이다.” 우리나라가 또다시 비극적인 길로 가지 않기 위해서 대선 후보들의 말을 경청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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