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작곡의 욕망을 불어넣은 노래

[그 기자의 '좋아요'] 김형찬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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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찬 한겨레 기자

[음악] 릭 애슬리 ‘투게더 포에버’


날라리가 되기엔 2000원이 부족했다.
녀석들은 따로 모여서 뭐라고 쑥덕거리더니 미안하다며, 미안한 기색도 없이 자기들끼리 롤러장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난 결국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고, 대신 나중에 친구 놈이 잔뜩 늘어놓는 무용담을 부러운 시선으로 한참 들어야 했다. 녀석의 얄밉게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와 함께. 롤러장에 가면 예쁜 또래 여고생들도 많지만 음악이 그리도 신난다던데. 내가 거기서 듣지 못한 음악들은 지금쯤 어디에 모여 물결치고 있을까.


녀석이 부르던 콧노래의 정체를 알게 된 건, 지금은 가산동으로 이름이 바뀐 가리봉동행 버스 라디오에서였다. 문방구로 달려갔다. 1980년대 문방구에선 카세트테이프에 노래를 복사해 팔았다. 저작권법이 있었어도 공소시효가 다 지난 불법적 추억이기에, 갈색 마그네틱테이프가 늘어지도록 그 노랠 들으며 거리에서 미친 듯 고성방가 했음을 자백한다.


나를 작곡하게 만든 노래, 릭 애슬리(Rick astley)의 ‘투게더 포에버(together forever)’. 댄스 리듬 특유의 ‘북치기 박치기’ 드럼이 시종일관 기분 좋게, 귓속의 고막을 여의봉처럼 토닥여주지만, 댄스곡의 본질을 배반한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진폭이 큰 발라드 성 멜로디가 워낙 감미로웠다. 지금 들으면 세월을 이기지 못한 편곡이나 사운드가 못내 아쉽지만, 그래도 괜찮아, 아련한 기억이라는 악기소리가 음표와 음표 사이 곳곳의 빈틈을 가득가득 메워주고 있으니까.


“당신이 기타로 ‘도’를 치면 코끼리가 나오고, ‘미’를 치면 호랑이가 나온다.”
상상도 할 수 없이 작은 끈(초끈, super string)의 파동이 물질을 만든다고 하는 초끈이론, 그 초끈이론을 설명하는 김상욱 부산대 물리학과 교수의 비유처럼 이 노래가 시키는 대로 몸을 연주하다 보면 G#메이저와 A메이저 음계 사이 어딘가를, 인사불성으로 오르내리는 잘 모르는 내 모습을 느꼈다. 내게 작곡하고픈 욕망을 불어넣어준 노래, 널 그때 그 롤러장에서 처음 들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돼 있을까? 궁금하지만 확신한다. 지금 이 인생이 아니더라도 널 듣게 된 걸 결코 후회 않고 있겠지. 때론 슬프거나 외롭더라도 널 가끔 흥얼거리며 여보란듯 여전히 철없이 살아가고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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