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시민들은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이슬람 7개국 국민의 미국 입국 및 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난민 프로그램마저 6개월 가까이 유예시키는 등 전 세계적으로 반 이민 여론을 조성하고 있는 트럼프를 국빈 자격으로 맞이할 수 없다며 정부의 초대에 격렬하게 반대하고 있다.
‘국빈방문’의 경우 관례적으로 여왕 접견과 버킹엄궁 체류, 영국의 의회 민주주의를 상징하는 웨스트민스터 연설 기회가 주어진다. 집회에 참여한 영국 시민들은 트럼프에게 그런 영광을 줄 수는 없다며, 문제를 만든 장본인인 메이 총리가 초청하는 ‘공식방문’으로 모양새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여왕’과 영국이 국제적인 망신을 당할 것이라며 언론을 통해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제레미 콜빈 노동당 총수와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급기야, 지난 1일 하원에서 크게 충돌했다. 콜빈 총수가 트럼프의 영국 국빈방문을 반대하는 국민청원운동의 서명자 수가 160만명을 돌파한 것을 언급하는 한편 트럼프의 반이민 행정조치 및 여성인권에 대한 정책 등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그를 초대한 메이 총리를 정치적으로 압박했다. 취소가 힘들다면 최소한 일정을 연기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일부 보수지들은 이러한 메이 총리의 발언을 두고 ‘영국 시민들의 이익을 방어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쩔 수 없다’(‘선’)며, ‘국빈초청을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굳이 트럼프를 ‘적’으로 설정하기보다는 ‘친구’로서 건설적인 비판을 하는 편이 모양새가 낫다’(‘데일리 메일’)는 우호적인 논평들을 내놓았다.
하지만 런던 곳곳에 위치한 영국 런던대연합을 중심으로 시작 된 대학가의 반-트럼프 시위는 이번 메이의 총리의 발언 이후 격화되는 추세다. “어떻게 트럼프를 막을 수 있을까?(How can Trump be stopped?)”라는 구호가 전국 곳곳에서 외쳐지는 가운데, 영국 총리관저 앞의 다우닝 스트리트마저 아이부터 노인, 학생, 부부에 이르는 각양각색의 시민들로 포위돼 외신의 주목을 끌었다. 지난 5일, 언론을 통해 밝혀진 시위의 규모는 4만명에 이른다.
사실 이번 집회는 그 방문 수준의 격하가 ‘진짜’ 목적이라기보다는 ‘트럼프’로 대표되는 반 이민, 난민 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를 시민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을 통해 표시하고자 한 일종의 정치적 퍼포먼스로 볼 수도 있다. 다른 유럽국가들이 트럼프 당선 이후 자국 여론의 눈치를 보며 차마 트럼프와의 관계 정립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영국 정부는 국빈초청이라는 과감한 액션을 취했다. 먼저 맞는 매가 덜 아프다지만, 신중한 외교 정책으로 이런 소란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이번 국민청원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와 무관하게 안타까운 점은, 한 달이나 국빈초청 여부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면 국익은커녕, 그 시도 자체가 국가적 낭비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영국 하원에서 트럼프의 국빈방문 철회 청원은 오는 20일에나 심사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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