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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 치이고 윗선 눈치…“이러려고 기자했나” 자괴감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1부)기본에 답이 있다 ①최순실 보도, 그 후

김창남 기자2017.01.03 20:55:06

촛불, 저널리즘 역할 의문 던져
10명중 6명 “언론 제대로 못한다”
권력 감시 저널리즘 본령 확인
뉴스룸 내부 적폐도 청산 필요


“정치와 자본 논리에 언론사는 기업으로 추락했고, 기자는 저널리스트가 아닌 직원으로 전락했다.” 언론이 저널리즘 기본에서 멀어진 이유를 묻자 한 기자는 이렇게 답했다. 기자협회보가 지난해 12월 14~20일 현직기자 17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널리즘 기본과 멀어진 이유로 기자들은 ‘수익 우선’ ‘자사 이기주의’ ‘정치적 편향성’ ‘자본권력과 유착’ ‘속보 경쟁’ 등을 들었다.


‘1000만 촛불’은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언론에 근본적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언론은 그동안 ‘하고 싶은 말’만 하는 대통령에게 당당히 손들어 질문하지 못했고, 서민들의 노후자금이 재벌 기업의 경영권 승계에 이용되는데도 눈감으며 낮은 곳을 향해 귀 기울이기보다는 특권·기득권 구조를 고착화하는데 일조했다. 시민들은 비선의 국정농단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냐고 언론에 묻고 있다. 설문조사에서 기자 10명 중 6명이 “우리나라 언론이 언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치 않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언론이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고 ‘진영논리’에 매몰된 사이 독자들과 시청자들은 지면을 덮고 TV뉴스를 외면했다. 하지만 언론은 오히려 귀를 닫고 독자들이 멀어진 이유를 급변하는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른 언론산업 위기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했다. 뉴스 경쟁력 강화 보다는 수익을 우선하면서 기자들을 사업에 내몰았고, 입바른 소리를 하면 징계하거나 왕따시키는 조직 문화가 뉴스룸 내부에 암처럼 퍼졌다. 연성기사가 위기에 빠진 언론을 구할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고 믿고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페이스북 등 SNS에서 리스티클(목록형 기사), 카드뉴스 등이 이용자들의 눈길을 끌면서 그 곳에 답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는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언론 보도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이 실체를 드러내면서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가 저널리즘의 본령이며, 성역없는 보도와 심층취재, 팩트의 힘을 확인시켰다. 이와 함께 뉴스룸 내부의 비민주적 요소를 혁신하고 소통 구조를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던졌다. 기자협회보는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시리즈를 통해 다시 저널리즘으로 가는 길을 묻는다. 



생존논리에 멀어진 저널리즘
뉴스경쟁력보다 유통에 신경
내부 견제·소통 등 강화해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통해 국민들에게 갈채 받던 언론이 또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게이트를 둘러싼 취재경쟁이 과열되면서 반칙이 넘쳐나고 있어서다. 의혹의 중심에 선 관련자들의 반론권이 취약하다는 점을 이용해 한두 주변인의 전언만 듣고 생산된 기사가 단독이란 간판을 붙이고 버젓이 유통되고 있다.


단독 찾기에 혈안이 돼 있다 보니 이번 사태를 수습하기 위한 대안 제시 역시 언감생심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주요 증인들이 언론보도를 인용한 의혹제기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할 때마다 헐거운 취재 그물망에 국민들은 또 한 번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다.


이처럼 언론에 보냈던 갈채가 점점 잦아들면서 언론이 비판한 권력에 대한 동정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정치부장 출신의 한 방송사 간부는 “팩트 체크가 안 되면서 단순 증언을 받아쓰기 급급하다보니 옐로저널리즘이 횡행하고 있다”며 “찜찜한 오보에 대한 역작용으로 권력에 대한 동정론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우리 언론이 지난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던 이유는 진영논리를 떠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캐기 위해 현장에서 발품을 파는 취재경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만 해도 우리 언론은 진영논리라는 낡은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두고 비판 대상을 비호하거나 외면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 언론의 선명한 스탠스 때문에 오히려 건전한 비판마저 진영논리에 발목이 잡히기도 했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본 펜은 경제권력을 향해 더욱 무뎌졌다. 회사의 생존 논리 앞에 저널리즘 복원을 부르짖는 기자들의 목소리엔 해사 행위자라는 주홍 글씨가 붙기 십상이었다.


실제로 본보가 지난해 12월 14~20일 전국기자 1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저널리즘 기본에 대한 기자 인식조사’ 결과(이하 저널리즘 인식 설문조사)에 따르면 언론이 저널리즘의 기본과 멀어진 이유에 대해 ‘광고주 편향’이라는 답변이 59.9%(103명)로 가장 많았고 ‘정치적 편향’(74명) ‘탐사보도 부재’(36명) ‘자사 이기주의’(32명) ‘출입처 동화’(21명) 등이 뒤이었다.


저널리즘의 기본을 침해하는 외적 요인으로 광고주의 입김 작용 여부를 묻는 질문에 ‘그렇다’는 답변이 133명(매우 그렇다 76명+대체로 그렇다 57명)으로, ‘그렇지 않다’는 답변(22명·대체로 그렇지 않다 10명+전혀 그렇지 않다 12명)보다 월등히 앞섰다. 특히 정부와 대기업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하려다 좌절된 경험은 각각 55.8%, 65.5%로 조사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회사 측이 앞세운 생존 논리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졌지만 이번 게이트를 통해 허상이었음이 입증됐다. 동아일보 노조는 지난해 11월 노보를 통해 “신문 매체와 직접적인 비교는 힘들지만 최근 최순실의 태블릿PC를 단독 보도한 JTBC의 뉴스룸은 저널리즘의 본령을 지키면서도 기업들의 광고가 몰리면서 수익성 역시 극대화됐다. 콘텐츠와 수익이 선순환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유효기한을 넘긴 낡은 취재 관행이 취재현장에서 여전히 발붙이고 있는데 그 역시 청산 대상이다.


세월호 등과 같은 대형 참사현장에서 기자들이 우왕좌왕했던 이유는 경험 적은 기자들만 현장에 보냈기 때문이다. 진실보다 속도를 우선시 하는 중계식 보도도 현장에선 불문율이다. 진실규명 앞에서 변죽만 울리다 그치는 언론의 냄비근성 역시 적폐 중 하나다. 우리 언론이 축적된 현장 경험을 그대로 방치하고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면서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돼 왔다.


국민들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저널리즘을 회복시키고 기자정신을 되살려야 한다는 게 기자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과 견제 기능을 복원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는 기자 초심으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저널리즘의 기본을 어떻게 복원시키는가가 언론이 풀어야 할 과제다.


그동안 우리 언론은 유통 플랫폼 등 겉모습에만 신경 썼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저널리즘의 토대가 없으면 기술적 기교는 모래성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분단 체제를 이용한 종북 프레임이나 권력에 기대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기득권 프레임 역시 청산돼야 할 구시대 유물임을 ‘촛불 민심’이 일깨워줬다. 동맥경화를 겪고 있는 사내 언로 역시 제대로 혈류를 뚫어야 한다는 게 언론계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그간 젊은 기자들의 목소리가 수면 위로 부상하지 못했다가 이번 게이트를 지렛대 삼아 연이어 터져 나온 것도 그만큼 내부 동력만으론 ‘내부 문제’를 풀기 힘들 정도로 곪아 있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완인 언론 내부의 민주화 역시 필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국민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세계일보, 연합뉴스, KBS, MBC, SBS 등이 이번 게이트 보도를 통해 사내에 산적한 문제를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기자협회보는 구글독스를 이용해 지난해 12월 14~20일 기자 172명을 대상으로 저널리즘 기본에 대한 기자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일부 항목의 경우 복수로 대답한 응답자도 있었다. (일러스트=김성규 기자)

저널리즘 인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널리즘의 기본을 침해하는 내부 요인이 경영진이냐는 물음에 114명(매우 그렇다 72명+대체로 그렇다 42명)이 ‘그렇다’고 답한 반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3명(대체로 그렇지 않다 18명+전혀 그렇지 않다 15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밑에서 올라온 개혁의 목소리는 조직의 화합이나 분위기를 깬다는 이유로 묵살되기 일쑤였다. 한 메이저신문 노조 관계자는 “예전에는 ‘중이 절이 싫더라도 함께 절을 바꿔보자’며 이직을 설득했는데 지금은 떠나는 후배를 만류할 수 있는 비전이 없다”며 “다들 바쁘다보니 선배들 역시 후배들을 챙기지 못하는 등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라고 우려했다.


이 때문에 기자정신을 되살릴 수 있도록 공정보도위원회 등 사내 견제장치를 복원하는 한편 저널리즘 강화를 위해 팩트체커 시스템, 탐사보도팀 등을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CBS 권영철 선임기자는 “옳고 그름이 분명한 사안마저 상대방 목소리를 담으면서 오히려 편 가르기를 부추기고 있는데 이런 보도를 지양해야 하는 한편 출입처에서 나오는 관성적 기사로부터 기자들이 자유로워야 한다”며 “‘언론이 침묵하면 길가의 돌들(국민)이 일어나 소리칠 것’이란 말이 있는데 언론이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지 않기 위해 기자들이 먼저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작년 미국 대선 TV토론에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가디언 등이 실시간 팩트 체크를 통해 후보자들의 발언에 대한 진위 여부를 가려 저널리즘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국내 독자 역시 이런 흐름을 잘 알고 있는 데다 우리 언론이 지난 대선에서 후보자 검증을 제대로 못한 과오를 차기 대선 등을 통해 어떻게 만회할지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언론이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돼 온 경마식 보도, 진영논리에 따른 후보자 검증, 기계적 형평성 등을 어떻게 개선할지 이목이 집중되는 부분이다.


한 방송사 기자는 “내부 비판의 목소리가 조직 분위기를 해친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거나 왕따가 됐는데 언론뿐 아니라 정부, 학계 등 사회 전반에서 이런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며 “그렇지 못하면 제2,3의 세월호 사태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김창남 기자 kimcn@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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