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서 다시 만난 세월호 아이

[그 기자의 '좋아요'] 최종식 경기일보 미디어전략실장

▲최종식 경기일보 미디어전략실장

2014년 4월23일, 팽목항 앞바다의 차디찬 물속에 아이들이 몇 일째 갇혀 있던 시간 편집회의가 시작됐다. 현장에서 올라 온 유가족들의 실신과 오열, 구조방법을 둘러싼 혼선 등 정돈되지 않은 현장의 모습 그대로의 기사들이 편집회의 테이블에 올라왔다.


이 중 안산 단원고에서 올라온 기사를 확인하던 순간, 갑자기 숨이 꽉 막혀왔다. 배가 침몰하는 중에 유모양이 여동생에게 보낸 문자였다. “지금 배가 90도 기울어져 있어. 거짓말 아니고, 나 죽을지도 몰라. 네 옷 다 챙겨와서 미안해.”


세월호가 기울어가던 오전 10시9분께 기초생활수급자 가족의 유모양이 동생에게 보낸 문자라고 적혀 있었다. 갑자기 숨이 막혔다. 정적이 흘렀다. 보고하던 사회부장도 갑자기 목이 메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만 눈물이 흘러내렸다. 가난한 여고생이 수학여행에 입고 갈 옷이 없어 동생 몰래 옷을 가져와 죽음을 앞두고 보낸 문자였다.


기사는 1면에 배치됐다. 기사가 나가고 독자들의 아픔도 컸다. 구호단체를 비롯 시민들이 작지만 옷을 보내주겠다는 전화가 이어졌다. 지하방에서 가난하지만 꿈을 잃지 않았던 유양의 아픔이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됐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양은 많은 이들의 희망과 달리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


2016년 12월 광화문 광장. 구명조끼 앞 하얀 국화꽃이 된 유양을 만났다. 주변에 촛불이 타올랐지만 유양은 여전히 추워보였다. 그리고 간절히 요구하는 것 같았다. 이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세월호 문제가 나올 때마다 유양의 문자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정말 미안했다. 우리가 조금만 일찍 인천의 선사들의 부정부패를 찾아내 개선시켰다면, 우리가 좀 더 일찍 안전문제를 찾아서 보도했다면 하는 미안함이었다.


또 이 아이들이 소리 없는 절규를 하던 시간 대통령은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올리고 책임자들은 구경만 해 놓고도 뻔뻔하게 잘못이 없다고 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참으로 부끄럽다.


다시 광장에 섰다. 광장으로 나온 유양에게 정말 따뜻한 옷 한 벌 전하고 싶었다. 그 길을 광장에서 꼭 찾겠다고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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