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지 않았다면 3000일을 못 버텼으리라

[그 기자의 '좋아요'] 조승호 YTN 해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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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호 YTN 해직기자

울트라마라톤


내 성격의 장단점을 안다. 일할 때 꼼꼼하다. 대신 속도가 느리다. 그런데도 뒤처지는 것을 못 견딘다.
그래서 남들보다 먼저 출근했다. 출입처에는 석간신문 기자처럼 나갔고, 내근부서에 있을 때는 1시간 먼저 출근했다. 주변에서는 ‘워커홀릭’으로 오해했다. 집사람마저 포기했다. 새벽에 나가도, 밤늦게 들어와도, 휴일에 출근해도 타박하지 않았다.


그러다 해직됐다. 직업을 잃었다는 상실감보다 당장 할 일이 없다는 공허감이 더 컸다. 술도 못 마시고, 딱히 취미라 할 만한 게 없었다. 달리기 밖에는….


식구들은 내가 해직 이후 짜증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동료들은 내 건강을 걱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가슴에 쌓인 울화를 풀고 건강을 지탱할 수 있는 탈출구가 바로 달리기였다.


‘즐달’이라고 한다. 즐겁게 달리기. 적당히 스트레스 풀고 적당히 건강 챙기는 딱 그만큼만 달렸다.
그런데 평생 겪지 않을 거라 여겼던 일이 발생했다. 일요일 아침 집사람과 달리기하러 나가다 집 앞에서 체포됐다. 다음날로 예정된 YTN 파업의 기를 꺾으려는 꼼수였다. 나는 영장이 기각돼 풀려났지만, 노조위원장 노종면은 앵커로 전 국민에게 얼굴이 알려졌는데도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됐다.


화를 누를 길 없어 100km 울트라마라톤을 뛰었다. 토요일 저녁 6시부터 일요일 오전 9시까지 15시간을 뛴다. 마지막 20km는 걷다시피 했다. 온몸의 체력이 바닥을 확인하는 순간… 쾌감을 느꼈다.
나중에 KBS 노조가 파업을 할 때 구호가 ‘Reset KBS’였는데, 나도 이 때 내 자신이 Reset되는 느낌이었다.


그 뒤 마음을 훌훌 털어내고 싶을 때 울트라마라톤을 뛰었다. 지금까지 7차례. 몸보다 정신 건강에 더 좋은 것 같다.
달리기가 특이해서일까? YTN, MBC의 공정방송 투쟁을 다룬 영화 ‘7년-그들이 없는 언론’에도 울트라마라톤을 뛰는 장면이 나온다.


사람들은 묻는다. 100km를 어떻게 뛰냐고. 나는 대답한다. 공정방송 여정보다 100km 뛰는 게 훨씬 쉽다고. 100km는 내가 얼마나 뛰었는지, 또 뺄셈만 할 수 있다면 앞으로 얼마가 남았는지 명확하다. 그러나 우리의 투쟁은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


조금 있으면 3000일이다. 만 8년을 넘었다. 내년이면 끝날까? 언론은 정치로부터 철저히 독립돼야 한다고 믿으면서도 자꾸만 정치상황에 기대감을 가지려는 내 모습이 싫다.


100km든 42km든 10km든 자기에게 맞는 거리를 뛰면 된다. 몸과 정신 모두에서 건강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내가 마라톤을 뛰면서 마음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스스로 망가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것처럼, 대한민국의 모든 기자들도 잔을 테이블에서 입까지 가져가는 팔운동 말고 무슨 운동이든 땀 흘리며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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