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부 남녀평등 방송가이드 '낮잠'

방송심의 반영 안되고 제작진은 있는지도 몰라

여성부가 남녀 평등문화 확산을 위한 ‘방송심의용 가이드라인’을 제작했으나 방송위원회 심의 과정 및 방송 제작 일선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월말 여성부가 제작한 이 가이드라인은 방송위원회 심의 활동시 남녀평등적 시각을 적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안내서로 만들어졌으나 심의위원들과 방송위 실무자들은 이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방송 일선 제작진들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방송심의용 가이드라인에는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여성 몸의 불필요한 강조 △여성관련 주제의 기사 부족 △여성 비하적 표현 △기사와 무관한 여성 대상화 영상 등이 구체적 심의 조항으로 제시돼 있다. 기사와 관련이 없는데도 여성을 비추거나 범법자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사건을 필요 이상 강조하는 것, 여성 능력을 과소 평가하거나 맞벌이 부부인데도 가사의 일차적 책임은 여성에게 있는 것으로 표현한다면 심의 대상이다.

여성부 권익증진국 이기순 과장은 “여성 몸의 대상화, 선정성, 여성 과소 대표, 성차별 언어 등이 계속 심의에서 지적돼야 일선 제작진도 경각심을 갖게 된다”며 “참고용과 명문화는 커다란 차이가 있는 만큼 가이드라인 내용이 방송위 심의규정에 포함돼야만 실질적인 구속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성부가 지난 2월 27일 방송3사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고 가이드라인을 소개하며 성차별적인 TV 프로그램의 심사에 활용해줄 것을 당부하고, 방송위원회에도 심의 규정에 반영해달라는 협조 요청을 했으나 활용 정도는 아직 미미한 실정이다.

한 방송사 교양 PD는 “여성부 가이드라인이 있는 줄 몰랐다”며 “시사프로그램을 만들다보면 여성단체로부터 선정성 지적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가이드라인을 참고하면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방송위원회 한 심의위원은 “여성부 가이드라인이 심의위원 사이에서 공유된 적이 없다”며 “현재 심의 안건으로 올라오는 것들은 대부분 간접광고와 여론조사 불방 등에 관한 것이고, 남녀평등적 시각에서 심의한 실례는 아직 없다”고 말했다. 다른 한 심의위원은 “심의원(모니터 요원)들이 1차로 문제 프로그램을 지적하면 방송위 사무국에서 안건을 정리해 올리기 때문에 무엇보다 심의원들에 대한 성인지 교육이 중요할 것”이라며 “당장 심의규정에 반영하기 어렵다면방송위에서 여성부 심의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심의원들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송위원회 김성규 평가총괄부장은 “여성부 가이드라인은 상당히 세부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이를 일일이 심의 규정에 담기에는 힘든 점이 있다”며 “심의 규정에 대한 개정 논의가 있을 때 전문가와 각계 의견을 들어 반영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심의위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다시 한번 홍보하고 심의원 교육에도 여성부 가이드라인이 주지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여성부는 현재 가이드라인을 토대로 방송3사의 보도·오락프로그램을 모니터하고 있으며 연말 그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서정은 기자 punda@journalist.or.kr 서정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