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이 선거를 하는 방법

[글로벌 리포트 | 중국]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총국장

잘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최근 중국에서도 선거가 있었다. 도시 지역의 구·현(區縣), 농촌 지역의 향·진(鄕鎭) 등 기초 행정단위별로 인민대표를 선출하는 선거가 이달 중순 중국 각지에서 실시된 것이다.


중국 각 지역에는 인민대표대회와 행정기관인 인민정부가 있으며 현·향급 인민대표는 중국인들이 직접선거로 뽑는다. 이어 현·향급 인민대표들이 간접선거로 성(省)급 인민대표대회 대표를 뽑고, 성급 인민대표들이 다시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대표자들을 뽑는 피라미드 방식이다.


형식적 대의기구인 인민대표를 뽑는 선거와 별도로 실질적 통치기구인 공산당의 당 대표를 뽑는 선거도 각 기층 단위에서부터 시작돼 내년 6월까지 피라미드 식으로 실시된다. 이들이 모여 내년 하반기에 제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하고 공산당 지도부를 선출한다.


지난 16일자 중국 각 신문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이 그 전날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선거구 투표소에서 자신의 표를 투표함에 넣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일제히 실렸다. 일주일 전에 치러진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현직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투표하는 장면이 미국 각 신문에 실린 것이나 하등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다. 중국의 선거는 여느 민주국가의 선거와 많은 대목에서 차이가 난다. 우선 선거 운동이 없고, 선거 유세나 정견 발표도 없다. 선거철이면 온 도시가 후보자의 선전 벽보나 현수막으로 도배되기 마련이지만, 그런 낯익은 풍경이 중국에는 없다. 심지어는 후보자를 알리는 공식 선거 공보조차 없다. 유일하게 선거철임을 알려주는 건 선거 날짜와 투표소를 공지하는 공고문이 아파트 입구 게시판에 붙는 정도다.


더구나 입후보도 결코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중국의 인민대표 선거 규정에 따르면 공산당의 추천 또는 주민 10명 이상의 추천을 받으면 인민대표 후보로 출마할 수 있다. 당 추천이 아닌 주민 추천을 받아 출마한 후보를 외신들은 ‘독립후보’라 부른다. 실제로 독립후보는 일부 대도시 지역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 또 어렵사리 나온 독립후보들에 대해선 공안당국이 각종 압력을 가하기 십상이다. 가택 연금으로 외부 출입을 제한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체포를 해 출마를 저지하는 일도 발생한다. 중국 당국의 눈에 이런 독립후보들은 반체제 세력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선거가 유권자의 표심을 정확히 반영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상하이 인민대표의 개표과정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쑹장(松江)구 상하이공정기술대학 선거구의 개표함을 열어보니 엉뚱하게도 미국 대통령 당선인 도널드 트럼프의 얼굴을 그려 넣은 투표용지가 다수 발견된 것이다. 트럼프 이외에도 상하이 출신인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의 이름을 적거나 심지어는 일본 AV(성인비디오) 배우인 아오이 소라의 얼굴을 그려 넣거나 이름을 적어 넣은 사람도 있었다. 홍콩 명보가 트럼프 얼굴이 그려진 실물 투표용지 사진과 함께 보도한 사실이다.


이런 표들은 당연히 무효로 처리됐지만 문제는 한두사람이 장난기를 발동한 게 아니란 데 있다. 미 대선에서 대역전극을 펼친 트럼프 열풍이 태평양 건너 상하이에 상륙한 것일까. 명보에 따르면 트럼프는 상하이 공정기술대 선거구 유권자 10%의 지지를 받았다. 아오이 소라와 장 전 주석도 각각 6%와 5%의 지지를 얻었다. 기권표는 21%였고 기타 표도 18%에 이르렀다. 이런 표를 빼고 나면 제대로 투표를 한 사람은 50%에 크게 못미친 셈이다. 이런 식으로 무효표가 과도하게 많이 나오면서 입후보자들이 당선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해 재선거를 치르게 됐다. 상하이 유권자의 진정한 표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명보는 상하이 유권자들이 중국 당국의 엄격한 출마자 제한 조치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런 일도 대다수 중국인들과는 무관한 일이다. 상하이에서 일어난 소동은 말 그대로 ‘이변’에 불과하다. 16일자 인민일보에 시 주석의 투표 사진이 머리기사를 장식했지만 필자가 만난 베이징 시민들 가운데 투표에 참가했다는 사람은커녕, 선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었다. 한 20대 청년은 선거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믿으려 들지 않기에 인민일보에 게재된 사진을 보여줬다. 그랬더니 “이건 우리와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잘라말했다. 필자만 머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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