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언론인 퇴진, 저널리즘 회복의 시작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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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역자(附逆者)의 사전적 뜻은 국가에 반역이 되는 일에 동조하거나 가담한 사람이다. 일제에 빌붙어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부역자들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한다. 안타깝게도 언론계에서 ‘언론부역자’라는 말이 나온다. 비선의 국정농단에 침묵하고, 취재 요구를 묵살하고, 개인의 출세에 언론을 이용한 언론인들을 일컫는다.


최순실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기까지 몇몇 언론의 치열한 취재가 있었다. TV조선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이 800억원에 가까운 돈을 냈고 이 과정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한겨레는 비선실세 ‘최순실’의 이름을 처음으로 등장시키며 1면을 통해 20차례 이상의 단독 기사를 냈다. JTBC는 대통령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 각종 국정운영 관련 문서가 최씨에게 사전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국기 문란행위”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 “과도한 인신공격” 등의 말로 진실을 겁박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명백한 거짓말을 했고, 결국 지난달 25일 첫 사과에서 “최순실의 도움을 받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자고 나면 터져 나오는 비선의 농단에 박 대통령이 연결된 정황이 속속 드러나면서 “도대체, 이게 나라냐”는 통탄이 나온다.


기자들은 “이러려고 기자된 게 아니다”며 자괴감을 곱씹어야 했다. ‘최순실’의 ‘최’자도 뉴스에서 언급하지 못한 현실에 좌절하고, 현장의 취재 요구에 “최순실이 대통령 측근이야? 측근이 맞나?”라며 묵살한 보도 책임자들의 천박한 인식에 절망했다.


현장 기자들은 ‘자기검열’에 빠지지 않았는지 자책하며 뉴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묻고 있다. 방송사와 일부 신문사에서 열린 기자총회에선 자사 보도를 반성하며 뉴스룸 정상화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보도책임자들은 반성은커녕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되레 “발제가 없다” “취재 역량이 떨어진다”며 리더십 무능을 기자들 탓으로 돌린다.


사실 뉴스룸 황폐화의 주역은 경영진과 보도책임자들이다. 수익성 강화를 이유로 영업을 강요하고, 권력 눈치보기로 일관하고, 주요 보직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기웃거렸다. 대통령의 눈치나 보면서 고언하지 못해 민주공화국을 이 지경으로 만든 청와대의 가신들처럼 보도책임자들은 저널리즘의 영혼을 개인의 입신과 맞바꿨다. “뉴스에 사(私)가 끼어서 그랬습니다”라는 김희웅 MBC 기자협회장의 글은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와중에 KBS는 성재호 새노조위원장에 이어 지난 11일 이영섭 기자협회장과 노준철 전 전국기자협회장, 이하늬 전 전국기자협회 대구경북지회장을 징계에 회부했다. “성주 외부세력 개입 키우라”는 사드 ‘내부지침’에 항의하며 낸 성명서 등을 문제 삼았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참사로 ‘공영방송이 아니라 순실방송’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기자들을 징계하겠다는 뻔뻔함에 기가 찬다.


지난 12일 전국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서 100만개의 촛불을 밝혔다. 교복을 입은 중·고생에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노부부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가 한목소리로 ‘대통령 하야’를 촉구했다. 도도한 시민혁명의 물결처럼 언론계도 그동안 쌓여 있던 내부의 비민주적 구태와 관행을 청산해야 한다. 보도책임자 사퇴 등 대대적 인적쇄신을 비롯해 뉴스룸에 대한 인적·물적 투자와 소통 강화 등 뉴스룸을 정상으로 되돌리려는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 전제 조건은 정치·자본권력과 짬짜미해 언론인이길 포기한 부역언론인들의 퇴진이다. 그래야 언론의 정도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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