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가 사라진 시대의 인간

[그 기자의 '좋아요'] 서은영 서울경제신문 기자

▲서은영 서울경제신문 기자

[미드]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흉측한 것이라면 질색이다. 흉측의 기준은 주관적이지만. 손바닥을 축축하게 만드는 긴장감조차 마뜩찮다. 공포영화, 스릴러물을 피하는 이유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빠져들었다. 매 회 평균 수백의 좀비가 짓이겨진 얼굴로 화면을 메우는 미국드라마(미드) ‘워킹데드’ 얘기다. 십여 분만 정중동의 자세를 지켜도 좀이 쑤시는 타입이지만 추석 연휴 이틀을 온전히 워킹데드 정주행(무려 시즌 1~6, 총 83편에 달하는 분량이다)에 바쳤다.


한 번쯤은 상상해 봤을 것이다. 잠이 들었다 깨어났을 때 사라져버린 인류와 문명. 이 미드의 시작이 그렇다. 주인공인 릭 그라임스(배우 앤드루 링컨)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병원 밖으로 나왔을 때 세상은 소수의 인간과 다수의 인간 아닌 것들(좀비)로 나뉘어졌다.


생존한 인간의 적은 좀비만이 아니다. 생존의 사투 속에 인간은 또 다른 인간과 싸우고 그 속에서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살아남는 것이 곧 정의가 된 세상에서 인간다움의 의미는 수도 없이 바뀐다. 구시대에 정의된 ‘인간성’이 나와 가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탓이다.



공권력이 사라진 세계에서 잘게 쪼개진 인간들의 커뮤니티는 갖가지 정치체제의 실험장이 된다. 민주정으로 둔갑한 과두정부터 공화정, 연방제까지, 원점으로 돌아간 문명을 다시 세워야 할 과제 앞에 선 인간은 분주하기 짝이 없다. 이끄는 자와 따르는 자가 제 역할을 찾고 때로는 역할을 맞바꾼다. 그러면서 고민한다. 리더란 무엇인가. 캐릭터들이 고뇌에 빠질 때마다 관객 역시 그 흐름을 쫓는다. 단순한 좀비물에 그치지 않는 이 드라마의 매력이 여기서 나온다.


기사를 찾아보니 매 시즌이 시작될 때마다 미국 전역에서 이 드라마를 본방 사수하는 팬의 수가 1700만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전세계 팬을 합치면 그 수는 배가 된다. 이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극단의 상황을 지우고 나면 그 속의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 때문은 아닐까.


갖가지 재난과 비극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공격을 받고 약한 것은 조롱받는다. 인간다움의 가치가 뒤흔들린다. 지구의 점유권을 빼앗겠다는 괴생물체가 나타난 것도 아닌데 우리의 현실은 종말 영화 속 시한부의 삶처럼 아수라장이다. 이 지구를 구원할 인간다움이란 무엇일까. 이 드라마는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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