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목록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육지인지…처참한 마린시티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태풍 ‘차바’ 피해현장 취재-황석하 부산일보 기자

황석하 부산일보 기자2016.10.12 14:18:41

▲황석하 부산일보 기자

지난 5일 오전 제18호 태풍 ‘차바’가 부산으로 접근하면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제보가 쏟아지자 기자의 컴퓨터 노트북에도 태풍이 몰아쳤다. 피해 상황 내용을 담은 기사를 실시간으로 보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정말 신문 기자인지 통신사 기자인지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기사를 쓰는 와중에도 단체 카톡으로 나무가 뽑히거나 지하차도 침수되고, 심지어 물탱크가 도로에 나뒹구는 피해 사진과 기사 처리를 요구하는 캡의 지시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캡의 총애를 받는 기자라고 하지만 왜 나한테만…’하고 불만이 터져 나오려던 순간이었다. “파바밧”하는 소리가 나더니 기자가 있던 커피숍이 어두워졌다.


정전이었다. 한국전력에 확인해보니 당시 오전 10시에 부산에서 2만여 가구가 정전이 됐다. 여기도 태풍 피해 현장이라는 생각이 들자 잽싸게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어두컴컴한 커피숍 내부를 찍었다. 정전 기사와 함께 사진을 첨부해 전송했는데, 5분도 안 돼 페이스북에 기사가 떴다. 사진을 함부로 보냈다가 커피숍으로부터 항의를 받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도 했지만, 고맙게도 커피숍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는 아직 없다.


이번에는 ‘부산 최고의 부촌’ 해운대구 마린시티가 난리란다. SNS에 떠돌고 있는 마린시티 영상은 재난 그 자체였다. 무조건 마린시티로 가야할 것만 같았다. 그것도 태풍이 부산을 관통하는 낮 11시가 다 돼서 말이다.


▲지난 5일 북상하는 제18호 태풍 ‘차바(CHABA)’가 몰고 온 거대한 파도가 부산 해운대 마린시티 해안도로를 덮치고 있다.			 (연합뉴스)

바람에 떨어진 간판이 날아들까봐 조심스럽게 운전한 끝에 마린시티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집채만한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오는 모습이 컴퓨터 그래픽(CG)이 아닐까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육지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아파트 단지로 유입되고 있었다. 여기에 있다가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대로 등을 돌려 다시 차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왔다. ‘경찰 기자들은 안전한 곳에 대피해 있으라는 내근 차장님의 지시도 있었으니깐…’하고 합리화하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린시티는 그날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마린시티의 처참한 모습은 물론 파도와 함께 방파제를 넘어 온 물고기가 아파트 화단에 널려 있는 사진도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기자도 마린시티에 살고 있는 한 지인으로부터 “침수된 지하주차장에서 우럭을 잡았다”는 제보를 받기도 했다. 사실 마린시티가 태풍 때마다 파도가 넘어와 침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쯤 되면 태풍에 취약한 마린시티의 구조적 문제와 지자체의 대책을 다시 한 번 더 짚어줄 필요가 있었다.


▲지난 5일 제18호 태풍 ‘차바’가 몰고 온 거대한 파도가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해안방파제를 넘어 보도블럭이 떠밀려 가는 등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영만 매립지에 건설된 마린시티는 5m 높이 방파제에 해운대구청이 추가로 1.3m 방수벽을 세웠지만 10m에 이르는 파도를 몰고 온 이번 태풍 때는 무용지물이었다. 이 때문에 부산시는 마린시티 해안가로부터 100m 떨어진 해상에 방파제 건설을 위한 용역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해양수산부의 ‘전국 심해 설계파 산출 연구’가 완료되지 않아 이마저도 중단된 상태다. 용역이 완료된다 하더라도 700억원에 이르는 예산 확보도 관건이다. 이래저래 마린시티는 태풍 때마다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기자에게 이번 태풍 취재는 SNS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실감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실시간으로 각종 사진이 SNS를 통해 전파되면서 기자들이 취재해야 할 현장을 친절히 알려줬다. SNS 때문에 일을 쉽게 했구나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SNS 때문에 일이 더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기술 발전이 가져온 빛과 그림자라고 해야 하나. 미래에 기술이 더욱 발전한다면 ‘알파고’와 같은 기자가 등장해 태풍 때 위험천만한 해안가에서 취재와 기사 작성까지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그때쯤이면 기자라는 직업을 온전히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  
  •  
  •  
  •  
  •  
  •  
  •    
  •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