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낯선 일상을 겉도는 것

[그 기자의 '좋아요'] 강창욱 국민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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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욱 국민일보 기자

외국을 다닐 때마다 내가 낯설어하는 것은 그곳에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가까스로 시간을 확보하고 돈을 들여 그토록 가려 하는 곳을 어떤 사람들은 일상의 공간으로 살고 있다. 나는 여행을 하지만 그들은 나를 상대로 돈을 벌거나 나와 상관없이 직장인이든 학생이든 주부든 자신의 일상을 살아간다.


나와는 정서적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그 현지인의 존재가 가끔 낯설어서 나 자신이 무슨 시간이라도 건너온 사람 같고,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나 됨직한 기분도 든다. 물론 내가 그 거리 한복판에서 벌거벗는다면 모두 나를 쳐다보겠지.


나는 탐험하듯 여행을 하는 타입이고 이런 방식의 여행에서 자극과 위안을 동시에 얻는다. 지난해 가을 일본 간사이 지방을 돌아다닐 때는 배낭을 메고 순례라도 하듯 매일 15~16시간을 걸어 다녔다. 새벽 1시나 돼서야 숙소에 들어와 새벽 6시에 다시 나가는 나를 보면서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수상쩍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애초 그럴 계획은 아니었는데 기왕 온 거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그렇게 걷기를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기이한 소설 주인공 ‘좀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행은 소년의 관찰기인 ‘좀머 씨 이야기’만큼이나 다이내믹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여행은 본래가 낯섦에 침투하면서도 겉도는 것인가 싶다. 여행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의 공간을 파고들지만 나는 그 낯섦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복할 생각도 없다. 낯설어야 여행지고, 겉돌아야 여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번은 마냥 겉돌 수만은 없는 일이 있어서 기사로 쓴 적이 있는데 그 휴가는 출장으로, 여행은 잠입 취재가 돼버렸었다. 지금 나는 남들이 여행지로 생각하는 그 나라를 사건 현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재난 취재차 처음 가게 됐던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다. 평생 그 나라로는 여행을 가지 못할 것 같다.


타인의 일상을 천연덕스럽게 겉돌다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고야 마는 여행. 그런 여행이면 나는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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