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정서적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그 현지인의 존재가 가끔 낯설어서 나 자신이 무슨 시간이라도 건너온 사람 같고,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나 됨직한 기분도 든다. 물론 내가 그 거리 한복판에서 벌거벗는다면 모두 나를 쳐다보겠지.
나는 탐험하듯 여행을 하는 타입이고 이런 방식의 여행에서 자극과 위안을 동시에 얻는다. 지난해 가을 일본 간사이 지방을 돌아다닐 때는 배낭을 메고 순례라도 하듯 매일 15~16시간을 걸어 다녔다. 새벽 1시나 돼서야 숙소에 들어와 새벽 6시에 다시 나가는 나를 보면서 게스트하우스 직원은 수상쩍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애초 그럴 계획은 아니었는데 기왕 온 거 가 보고 싶은 곳이 많았다.
그렇게 걷기를 멈추지 못하는 나 자신이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기이한 소설 주인공 ‘좀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여행은 소년의 관찰기인 ‘좀머 씨 이야기’만큼이나 다이내믹하지도 드라마틱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다.
여행은 본래가 낯섦에 침투하면서도 겉도는 것인가 싶다. 여행이라는 명분으로 타인의 공간을 파고들지만 나는 그 낯섦을 극복하지 못하고 극복할 생각도 없다. 낯설어야 여행지고, 겉돌아야 여행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한번은 마냥 겉돌 수만은 없는 일이 있어서 기사로 쓴 적이 있는데 그 휴가는 출장으로, 여행은 잠입 취재가 돼버렸었다. 지금 나는 남들이 여행지로 생각하는 그 나라를 사건 현장으로 기억하고 있다. 재난 취재차 처음 가게 됐던 어떤 나라도 마찬가지다. 평생 그 나라로는 여행을 가지 못할 것 같다.
타인의 일상을 천연덕스럽게 겉돌다 정해진 시간에 돌아오고야 마는 여행. 그런 여행이면 나는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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