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 어떤 여행을 담을까

[그 기자의 '좋아요'] 한현호 TBC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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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현호 TBC 기자

#일주일 전,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 캠퍼스, 담뱃불을 빌려달라더니 대뜸 한국의 삼국시대 역사에 대해 열변을 토하던 독일의 50대 만학도 아저씨를 만났다.


#원자력 발전소가 들어선 뒤 주민 없는 유령도시가 된 벨기에 도엘, 마을을 지키자며 시작된 벽화가 마을을 채웠고 관광객이 찾고 있다. 마을에 남은 한 여성이 벽화를 그리던 손으로 물 한잔을 건넸다. 정말 시원했다.


#4년 전, 스페인 순례길에서 마주친 어느 성당 앞, 무료급식으로 받은 빵을 떼어 나눠주던 남루한 행색의 거지를 만났다. 내가 더 안 돼 보였을까.


#길에서 만난 한 네덜란드 친구가 한국어 책같은데 주웠다며 노트를 건넸다. 맙소사, 한달 전 길에서 잃어버린 내 일기장이었다. 기적같은 일.


#5년 전, 캄보디아 한 초등학교, 부모님께 받은 새 운동화가 닳는다며 교실에서만 신고 먼지 풀풀 나던 흙길을 맨발로 걷던 아이, 꼭 안아 주었다.


일주일 전부터 길게는 5년이 지난 여행의 기억들이다. 돌이켜 보면 온전히 떠오르는 건 ‘사람’. 길과 성당, 라인강과 메콩강의 모습은 사진을 봐야 떠올릴 만큼 희미해졌지만 사람만은 강렬하게 잊혀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안내서가 있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쾰른 4700번지에 사는 사람 좋은 발라프씨를 만나보세요’ 식의, 물론 있을 리 없겠지만. ‘여행’을 키워드로 검색해 봤다. 많은 도시를 일주일만에 엮은 여행사 패키지, 맛집과 사진 명소를 알려주는 안내서 등 수많은 정보들이 쏟아진다. “#여긴 꼭 가(맛)봐야해” 식의 해쉬태그가 붙은 사진들도 근사하다. 사무실 동료들이 부러워 할 여행이지만 막상 여행을 끝내고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여행에 대한 추억은 조금씩 희석되고 만다.


같은 곳이라도 백 번을 가면 백 번의 다른 여행이 되고 천 명이면 천 가지의 다른 여정이 된다. 어딜 가든 여행 계획을 짰다면 잠시 머물러 봄이 어떨까. 그 속에서 의외의 만남과 인연이 찾아와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해시태그를 남길 수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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