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다해 머니투데이 기자
우연이었다. 에메랄드빛과 검푸른빛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호수, 호수를 둘러싼 웅장한 산맥, 동화에 나올 법한 붉은 성의 풍광을 담은 사진을 마주친 건. ‘블레드 호수’라고 했다. 발칸 반도의 슬로베니아였다.
단 한 장의 사진이었지만 첫눈에 반했다. 지독히도 비현실적이었다. 녹색과 푸른색 계열에 있는 모든 색을 들이부은 것만 같았다. 어떤 색인지 일일이 호명조차 어려웠다. 빨려 들어갈 것처럼 아득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가리라’ 다짐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휴가지를 덜컥 슬로베니아로 잡은 것. 일단 비행기표를 끊었다. 너무 즉흥적이었나 고민하던 차에 거짓말처럼 김이듬 시인의 책 ‘디어 슬로베니아’가 출간됐다. 슬로베니아행을 확정했다. 때마침 이 낯선 나라에 대한 에세이가 나온 건 운명이라고 여기며.
▲박다해 머니투데이 기자가 직접 찍은 블레드 호수 사진.
떠나는 비행기에서 시인과 함께 한 발 먼저 나라 곳곳을 훑었다. 그는 각 장의 틈새에 시를 소개한다. 슬로베니아 대표 시인 프란체 프레셰렌과 스레치코 코소벨, 알로이스 그라드니크의 시는 직접 번역했다.
▲김이듬 시인의 ‘디어 슬로베니아’
“얼마가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블레드 호수는 오늘이 며칠인지, 여행은 얼마나 남았는지 그 모든 현실적인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가만히 바라보고 또 보아도 쉴 새 없이 경탄이 나올 만큼 그 존재만으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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