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아람 중앙일보 기자
이를 계기로 대전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김원 프로 7단이 운영하는 ‘김원 바둑 도장’ 10명의 수련생 중 한 명이 됐다. 김원 바둑 도장은 국내에서 3대 바둑 도장으로 꼽히는 곳이다. 이후 대전지역 여성대회에서 몇 차례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기도 했다. 꿈은 손에 잡히는 듯 했다.
하지만 하늘이 천부적 ‘기재(棋材·바둑재능)’까지 허락하지 않았는지 프로기사를 꿈꿨던 소녀는 11살 어린 나이에 첫 실패를 맛봤다. 그 이후엔 애써 바둑판을 외면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바둑과의 인연은 뜻밖의 곳에서 꽃 피우기 시작했다.
바둑 아마 5단인 정아람 중앙일보 기자(문화부)는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 AI(인공지능) 알파고의 세기대결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를 디지털라이브 문자중계하면서 큰 주목을 끌었다.
“바둑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공중전화인데,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대회 경기결과를 대전에 계신 어머니께 전할 수 있는 수단은 공중전화 밖에 없었죠. 하지만 대회 중간에 떨어진 날엔 전화 걸기가 너무 싫어 전화기 앞에서 서성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기재도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아 다른 길을 택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미생(未生)’일 것 같았던 바둑과의 인연은 사실 그를 뒤따라 다녔다. 정 기자는 “2010년 언론사 입사시험을 볼 때 특기로 바둑을 넣었던 게 계기가 된 것 같다. 2013년 JTBC 경력공채 면접 때에도 면접관들이 바둑에 대해 많은 것을 물어봤다”며 “중앙일보 박치문 바둑전문기자가 2014년 3월 한국기원 부총재로 가고 그 자리를 메웠던 문용직 프로 5단이 그만두면서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바둑을 맡게 됐다”고 말했다.
바둑을 맡은 지 얼마 안 돼 바둑계가 대중들에게 이목을 받는 일들이 잇달아 터졌다. ‘응답하라 1988’에서 배우 박보검씨가 맡았던 극중 인물인 ‘최택’이 큰 인기를 끌면서 바둑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여기에 이세돌 9단과 알파고 간 세기의 대결로 이어지면서 ‘국민적 관심사’가 된 것이다.
“사회부에 있다 갑자기 바둑을 맡게 되면서 다소 무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사회적으로 관심을 끄는 일들이 잇달아 터졌죠. 만만하게 봤었지만 프로기사를 만나고 취재하면서 이곳 역시 캐면 캘수록 고갈되지 않는 ‘화수분’과 같은 출입처라는 것을 느꼈죠.”
최근 ‘이세돌의 일주일’이란 책을 펴낸 그는 지난 ‘세기의 대결’을 복기하면서 만감이 교차한다고 했다. 이 9단이 알파고에 첫 패배를 당했을 때 “실연을 당한 것 같다”고 표현했었다. “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여겼던 영역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증명됐죠. 기자 역시 로봇저널리즘이 확산되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 온 거죠. 단순 팩트 싸움이나 속보경쟁에서 벗어나 화두를 던질 수 있는 기사를 필요로 하는 시대가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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