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라"

[그 기자의 '좋아요'] 정혁준 한겨레 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정혁준 한겨레 기자

[책] 칼의 노래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김훈 선배가 쓴 <칼의 노래> 첫 문장이다. ‘꽃이 피었다’와 ‘꽃은 피었다’를 놓고 그는 몇날며칠을 고민했다고 했다. 조사 ‘한 글자’뿐이지만, ‘하늘과 땅’ 차이라고 했다. 김훈 선배는 “‘이’를 쓰면 사실을 말하는 것이고, ‘은’을 쓰면 의견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쉽게 풀면 이랬다. 이순신은 바다에서 일어나는 사실에만 집중한 리얼리스트였다. 당시 정치권력은 달랐다. 동인과 서인, 당파로 갈라져 있었다. 당파성이 지향하는 노선이 ‘정의’였다. 김훈 선배는 그들의 정의를 믿지 않았다. 사실 그대로의 이순신만을 보여주고 싶어 한 것이다.


김훈 선배는 저널리즘 문장을 쓸 때도 사실과 의견을 구별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에 기초한 것인지, 사실에 기초하지 않은 채 내 욕망을 지껄이고 있는 문장인지 구분하라”고 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의견을 사실처럼 말하고, 사실을 의견처럼 말하지 말라.”


2002년 난 사회부 기자였다. 마포경찰서를 출입했다. 그해 2월 소설가 김훈이 사회부 기자로 한겨레에 들어왔다. 종로경찰서를 출입했다. 그는 경찰 기자로 있으면서 ‘거리의 칼럼’이라는 3.5매 짜리 짧은 글을 썼다. 칼럼은 강요하지 않았다. 보여줄 뿐이었다. 생생한 현장이 들어가 있었다. 점철된 팩트가 녹아 있었다. 번뜩이는 통찰력이 살아 있었다. 그와 함께 1년 가까이 일하게 된 건 나에겐 행운이었다.


지금도 난 글이 잘 안 써질 때는 <칼의 노래>를 읽는다. 한 땀 한 땀 그가 이어가는 문장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간결체지만 접속사 하나 찾기 힘든 문장에선 숨이 막힌다.


15년 전 그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너는 개자식’이라고 말하고 싶잖아. 하지만 기자는 ‘너는 개자식’이라고 쓰면 안 돼. 그렇게 쓰면 그 자식은 개자식이 안 되고, 네가 개자식이 되는 거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자식이 개자식이라는 말을 입증해야 해. 입증하려면 수많은 사실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해.”



정혁준 한겨레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