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신문들은 매일 매일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내려보내는 지침에 따라 편집하는 까닭에 신문별로 지면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특히 기자가 관심을 갖는 중국 지도자들의 동향이나 발언 등 정치 기사는 글자 한 자 차이없이 똑같다. 자사 기자가 취재해 쓴 기사를 싣는 게 아니라 신화통신의 기사를 그대로 전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사를 ‘통가오(通稿)’라 부른다. 공통원고란 뜻이다.
필자가 가장 정성들여 읽는 신문은 광저우(廣州)에서 발행되는 일간지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와 매주 목요일에 나오는 ‘남방주말(南方週末)’이다. 이 신문은 가끔 ‘사고’를 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최근에도 ‘한 건’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2월20일자 중국신문은 약속이나 한 듯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인민일보와 신화통신, CCTV 등 3대 관영 언론사를 방문해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는 내용의 기사를 1면 톱으로 썼다. 물론 기사 본문은 통가오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 개방 정책을 보좌한 위안겅은 선전 경제특구를 건설한 장본인이었으니 그의 장례식 사진은 선전판 1면에 실릴 정도의 기사 가치가 있었다. 어쩌면 위안겅으로 상징되는 개혁의 시대가 가고, 공산당이 언론을 장악하는 통제의 시대가 왔음을 전하려 한 편집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시 주석이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는 제목 밑에 불경스럽게도 장례식 사진을 썼으니 공산당의 진노를 사 해당 편집간부는 해임을 당했다.
이밖에도 남방도시보는 여러 차례의 사고 기록을 갖고 있다. 유엔이 정한 국제 민주주의 날인 지난해 9월16일에는 흑색의 통단 광고를 게재해 ‘중국의 민주주의는 암흑과 같다’는 무언의 항의를 표현한 것이란 추측이 무성했다. 필자가 기억하는 최대의 사건은 남방도시보의 자매지인 남방주말의 파업 사태다. 2013년 1월 이 신문의 기자들은 사설 개작(改作)에 항의해 파업에 돌입했다. 중국에선 있을 수 없는 사건이어서 이를 전하는 외신 기사를 보면서도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새롭다.
중국에서 가장 신문다운 신문으로 남방도시보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비단 이런 몇 건의 사고 때문이 아니라 심층 취재나 탐사 보도 등 읽을 거리가 풍부한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여기서 중국을 읽는다’는 남방도시보의 홍보 카피 문구대로 필자는 남방도시보와 남방주말을 통해 오늘의 중국을 이해한다. 그러면서도 필자는 걱정이 앞선다. 최근 들어 중국 당국의 언론통제 강도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방도시보와 남방주말의 사고는 계속 이어지리라 믿는다. 그들의 기자정신을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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