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자유 침해하는 '전략적 봉쇄소송'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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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비판하는 기사가 명예훼손 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면 기사를 쓰는 기자는 주저하게 된다. 특히 권력기관이나 고위 공직자를 비판하는 기사를 최초 보도한 기자에게 소송을 제기하면 후속 보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최근 정부와 공직자가 비판적인 보도를 한 언론 혹은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도 이런 효과를 노린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소송은 피해를 배상받는 게 목적이 아니라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 목적이다. 비판적 보도를 하면 소송에 휘말릴 수 있으니 알아서 조심하라는 것이다.


‘정윤희 문건’ 보도와 관련해 청와대 비서실장과 핵심 비서관들이 거의 즉각적으로 기자들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 것이나,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이 세월호 참사 이후 관련 보도에 집중적으로 소송을 제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비칠 소지가 있다.


“국가는 원칙적으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엄연히 있지만, 명예훼손으로 인한 민·형사 소송이 비판적 보도를 제어하는 ‘권력의 무기’로 자리를 잡은 것 아니냐는 느낌마저 든다.


A기자는 한 지방검찰청의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쓴 뒤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에 이어 보도자료 배포중지와 청사 출입통제 조치까지 당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가기관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고 해당 기자의 취재활동까지 제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물론 언론보도로 말미암은 피해를 구제받기 위한 언론중재위원회 중재신청이나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 청구, 명예훼손 형사고소나 민사 손해배상 소송 등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를 막는 법·제도적 장치이다. 공직자라도 악의적 보도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언론은 사실에 근거한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국가기관과 고위 공직자가 언론사와 기자를 상대로 소송을 남발하면 언론의 자유 침해라는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전략적 봉쇄소송은 소송 결과와는 관계없이 상대방에게 고통을 줄 목적으로 제기되는 경우가 많아 언론사와 기자를 위축시킨다. 언론사는 법적 분쟁 가능성이 있는 기사를 피하고 싶어한다. 기자도 논란이 될 기사는 다루지 않는 자기검열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부당한 소송 부담에서 언론이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전략적 봉쇄소송을 제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캘리포니아주 등 미국 20여개 주에서 시행되는 전략적 봉쇄소송 규제 법률이 제도적 장치의 하나로 꼽힌다. 캘리포니아주의 민사소송법 425.16조는 “사회적 문제와 관련돼 헌법이 보장하는 언론의 자유를 행사하는 행위로 인해 제기된 소송은 당사자의 특별 신청에 따라 법원이 이를 조기에 각하해야 한다. 다만 원고가 당해 소송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언론에 대해 제기된 명예훼손 소송이 전략적 봉쇄소송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단하면 신속히 각하 판결을 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는 소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각하제도가 없어 이런 제도를 직접 도입하기는 힘들지만, 전략적 봉쇄소송으로 판단되면 별도의 기일을 지정해 신속한 결정으로 소송을 조기에 종결시키는 방법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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