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충실한 발빠른 기자 되고 싶다"

[인터뷰] 사건기자로 현장 뛰는 김훈 씨

▲한겨레 김훈 기자

8시 30분 종로경찰서 기자실로 출근. 9시 상황 파악 및 시경캡에게 보고. 10시 시경캡의 지시에 따라 취재 시작. 3시 데스크로 기사 송고. 오후 보고 후 퇴근.
한겨레 종로경찰서 2진 김훈 기자의 하루 일과는 여느 경찰기자와 다르지 않다. 곧 경찰서 새벽근무도 시작한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종로경찰서의 사건기자들과는 달리 ‘부국장급’ 기자다. 모자 속에 비친 희끗희끗한 머리칼에서도 수습 딱지를 갓 뗀 경찰기자의 ‘풋풋함’ 대신 ‘노장’의 향기가 났다.
수려한 문체의 문학담당 기자, 시사저널 편집국장, <칼의 노래> <자전거 여행> 등의 작가로 잘 알려진 그가 왜 사건기자로 현장에 돌아왔을까. 지난달 28일 오후 5시 한겨레신문 근처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창 있는 모자에 보라색 점퍼와 면바지, 운동화 차림의 그는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우면서 특유의 짧막한 문체로 대답했다.
-2월 20일 입사한 이후 어떻게 지냈나.
“부시 방한 반대 데모와 철도 파업 취재를 다녔다. 재미보다는 힘들다. 힘이 드는 일이니까. 가장 힘들 때는 데스크가 세 시간 전에 기사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현장기자는 따를 수밖에 없는데, 숨막히는 일이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사실을 확보해야 하고, 문장도 단정하게 정리해야 한다. 순간적으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든다.”
왜 다시 스트레스를 찾아온 걸까. “오랫동안 고민했던 것은 아니다. 평소 알고 지내는 김종구 사회부장과 술을 먹다가 자연스럽게 얘기가 나와 입사하게 됐다. (편집국장 시절) 남의 위에 있는 게 제일 싫었는데 밑으로 내려오니까 편하다.”
특히 사건기자를 택한 것은 ‘현장’에 대한 ‘갈구’ 때문이었다. “재작년 9월 시사저널을 그만두고 전라도 남평 친구 집에 있었다. 소설책이나 읽고 살았는데 관념적이고, 추상적이고 몽롱해졌다. 내가 죽어있는지 살아있는지 의식이 없었다”는 그는 “현장에 밀착한 기쁨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은 어렵다. 책보다 이해하기 어렵다.”
- 첫 기사로 철도노조 파업과 관련, 철도 노동자들의 근무조건을 문제삼은 기사를 썼는데.
“철도 노동자들은 24시간 맞교대 철회와 3조 2교대를 요구했다. 24시간 맞교대는 인간의 몸이 받아들일 수 없는 제도다. 그런데 우리는 철도가 생긴 이후 100년간 했다. 판단은 하나밖에 없다. 판단에 혼란을 일으킬 수가 없다. 이념, 방향성, 좌우의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상식으로 보면 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진작 점진적 개선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일부 언론들은 노동자의 요구보다는 교통대란, 경기 침체 우려 등 피해 상황만을 부각시켰는데.
“안타까운 일이다. 현실을 보는 시각이 수억만 가지다. 한 가지 물체를 보더라도 어떤 쪽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현실 이해는 지독히 어렵다.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특히 사건 기자는 발생한 사건을 전달하다보면 이면의 진실을 외면하게 된다. 사건 기자들의 고민이기도 한데.
“그렇다. 해결하기 힘들다. 진실은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다. 자기 의견과 사실을 구별해야 한다. 사실을 전하는 자의 의견이 개입되면 사실은 왜곡된다.”
-관점 없는 기사도 문제 아닌가.
“관점은 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철도 파업의 본질은 노동자의 고통이지만 취재된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 예컨대 24시간 맞교대는 노동자의 고통을 보여준 취재된 사실이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거듭 ‘사실’을 강조했다. “기자가 문장가가 될 필요는 없다. 기자는 수많은 사실들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게 좋다. 사실을 확보하지 못한 채 문장에 의존한 기자는 경멸한다.”
-자신만의 노하우라면.
“열심히 할뿐이다. 그런데 뛰어다닌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어디로 뛰어가는지 알고 가야 한다. 정보가 있는 곳, 보도할 가치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보도할 가치의 기준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 흥미가 있는 곳이다. 상식에 어긋난 일을 다루는 것도 필요하다.”
-특별히 취재하고 싶은 분야는.
“미세한 부분을 보도하고 싶다.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는 것 말이다. 예컨대 대도시 가로등의 각도는 몇 도로 구부려나야 편하고 아름답고 덜 추악스러울까. 육교는 90도인데 더 유연하고 아름답게 할 수는 없을까 하는 그런 문제들. 어떤 환경에서 뭘 보고 사느냐는 것은 중요하다. 보이는 게 인간의 감성을 지배한다.”
-일주일간 취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철도 노조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협상 타결 내용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서로가 끌어안고 울었다. 위원장은 보고 후에 사전 체포 영장이 발부돼 제발로 잡혀 들어갔다. 민영화, 해고자·구속자 문제 등 타결 내용에 불만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조합원들은 일단 받아들였다.
죽지 않고 산다는건 타협의 산물이다. 받아들이기 어려운 걸 받아들이면서 살 수밖에 없다. 조합원들을 보면서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정부의 권력과 사람들이 거리에서 충돌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길은 없을까. 철도파업은 정부가 당연히 했어야 할 일을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입은 후에야 한 대표적인 예다.”
끝으로 그는 “재빠른 기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사실에 충실하고, 발빠른 기자”라고 덧붙였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인터뷰 내내 줄담배를 피는 그에게 금연에 대해 물어봤다. “내일부터 끊어요. 꼭 기사에 써 줘요”라고 한다. 왜? “담배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건강을 지켜) 기자를 오래 하려고.”
박주선 기자 sun@journalist.or.kr 박주선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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