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감할 수 없는 비극의 시대

[그 기자의 '좋아요'] 김상헌 MBC경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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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MBC경남 기자

[책] 김진숙의 ‘소금꽃나무’


문인도 아니고, 가방끈이 긴 것도 아니다. 그런데 글을 참 잘 쓴다.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심금을 울리는 좋은 문장과 표현이 많다. 아래는 젊은 노동자의 자살을 맞닥뜨린 슬픔을 표현한 문장이다.


“실감할 수 없는 비극은 더욱 참혹하다. 어차피 실감은 찾아들 것이고, 그 사이 비대해진 슬픔의 무게는 존재가 감당할 수 있는 슬픔의 양을 배반하기 때문일 것이다.”(140쪽)


잔인할 정도로 신산한 삶을 짊어진 이만이 갖는 성숙 아닐까 싶다. 천형 같은 가난, 굴곡 많은 가정사. 어느 구석을 들여다봐도 희망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을 것 같은, 절망하는 게 당연할 것 같은 사람이 희망을 말한다. 어찌 울림이 얕겠는가.


“낮은 곳에 피었다고 꽃이 아니기야 하겠습니까. 발길에 차인다고 꽃이 아닐 수야 있겠습니까. 소나무는 선 채로 늙어 가지만 민들레는 봄마다 새롭게 피어납니다. 부드러운 땅에 자리 잡은 소나무는 길게 자랄 수 있지만 꽁꽁 언 땅을 저 혼자 힘으로 헤집고 나와야 하는 민들레는 그 만큼만 자라는 데도 힘에 겹습니다. 발길에 차이지만 소나무보다 더 높은 곳을 날아 더 멀리 씨앗을 흩날리는 꽃. 그래서 민들레는 허리를 굽혀야 비로소 바라볼 수 있는 꽃입니다.”(163쪽)


▲김진숙의 ‘소금꽃나무’

낮은 곳으로 향하는 그를 따라가면서 사랑을 만난다. 사랑하기 때문에 분노한다.


“제일은행 노동자들이 잘릴 때 주택은행 노동자들은 시금치를 무치거나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는 일이 더 중요했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잘릴 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대부분 잔업을 하거나 축구를 보고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잘릴 때 남성 노동자들은 이제 시집이나 가라고 농담처럼 말했고 형님들이 잘릴 때 동생들은 ‘헹님은 인자 낚시도 실컷 댕기고 땡잡았네’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웃으면서 했던 똑같은 말을 울면서 듣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219쪽)


책이 나온 지도 어언 10년. 그 때의 진단이 유효하다는 게 가슴 아프다. 그래서 더욱 우리 시대 필독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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