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트리포터
‘광고 없는 온라인 잡지’ 표방...한달만에 138만달러 펀딩
탐사보도·댓글토론으로 독자들과 쌍방향 소통 나서
편집국 신설 등 혁신 계속
디벨트
2002년 뉴스룸 통합 이어 디지털퍼스트·유료화 실험
신문용 기사 별도 제작 않고 디지털 기사 중 취사선택
태블릿판에서 새 독자층 확보
기자협회보가 세계 각국 미디어 기업의 혁신 현장을 찾아가 봤다. 뉴스 소비가 활자에서 웹, 모바일로 이동하면서 각국 미디어는 뉴스 제작과 유통 시스템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 디지털에서 기존에 없던 새로운 독자층을 찾았거나, 디지털 뉴스 유료화에 연착륙한 언론사도 있다. 뉴스산업에 위기를 가져왔던 디지털 환경에서 다양한 실험을 통해 여러 가능성을 찾으려는 혁신의 노력들이다. 혁신을 주도하며 비즈니스 모델 구축에 성공한 세계 각국 미디어 기업의 혁신 사례를 4회에 걸쳐 싣는다.
크라우트리포터는 지난해 6월 광고 없는 온라인 잡지를 지향하며 크라우드 펀딩으로 한 달만에 4300명의 유료독자와 138만 달러를 모았다.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언론사 설립은 크라우트리포터가 독일에서 처음이었다.
크라우트리포터는 광고가 없는 뉴스페이지, 현안에 대한 심층·탐사보도로 기존 매체와 차별화하고 있다. 정기구독자는 1년에 60유로를 지불한다. 기사별로 구매할 수 있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한때 8000명까지 육박했던 유료독자는 9월 현재 6000~6500명 선이다.
크라우트리포터는 주류언론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매체를 만들자는 의견이 독일 젊은 언론인을 중심으로 일어나면서 시작했다. 이들은 독일 주류언론이 독자와 일방 소통하거나 친서방적·친미국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논조, 현상을 따라가는 보도에 머물고, 디지털시대에 적극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활발한 토론이 있었고, 이런 변화의 물결은 기존 매체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독자들이 결합하고, 자기분야에서 일가견이 있는 언론인이나 팬그룹을 형성할 정도로 유명한 언론인이 참여하면서 펀딩으로 이어졌다.
크라우트리포터는 베를린의 경우 기자 8명에 외부 필진이 참여하고 있다. 중점적으로 정치·경제·사회 현안에 대한 배경을 설명하고 포괄적으로 분석하는 뉴스를 생산한다. 기사 길이만 2만자가 넘는 콘텐츠가 많다. 한마디로 탐사보도다.
리코 그림 편집자 겸 기자는 “우리는 어떤 문제나 사안을 단지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다른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보도한다. 예를 들어 독일통일 문제에 대한 여론조사가 있다고 하자. 기존 매체 보도는 내용이 비슷하고 톤만 조금씩 다르지만 크라우트리포터는 의심쩍은 대목이 없는지 되짚어본다”고 말했다.
댓글을 통한 독자와 쌍방향 소통도 활발하다. 유료회원만 크라우트리포트 기사에 대한 댓글을 작성해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데, 지난 1년간 1만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인신공격이나 욕설은 찾아볼 수 없고, 단 1건도 삭제나 수정요청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댓글은 우리처럼 짧게 한두 줄 쓰는 것이 아니라 A4 1장 분량의 사실상 논평 수준이다. 리코 기자는 “댓글 참여는 독자들이 크라우트리포터라는 공간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중시한다는 뜻”이라며 “설립 모토였던 독자와 적극적으로 만나고, 독자 요구를 반영하는 언론매체로서 존재를 재확인했다”고 설명했다.
크라우트리포터는 지난달 15일부터 유료회원만 기사를 읽을 수 있도록 정책을 바꿨다. 단, 유료회원이 크라우트리포터 기사를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에 링크를 걸면 일반독자도 이틀간 무료로 볼 수 있도록 했다. 그전까지 기사는 무료로 공개하고 댓글 토론에 참여하려면 유료회원으로 가입해야 했다.
크라우트리포터가 기사 유료화로 전략을 바꾼 것은 1년 정기구독이 끝나고 구독 연장을 포기하는 회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회사 존립까지 위협할 정도로 문제가 됐다고 한다. 정기구독 중단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더니 ‘기사가 무료인데 굳이 유료회원으로 가입할 이유가 없었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댓글 토론만으로 유료회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다.
크라우트리포터만의 뉴스로 독자를 유인해야 하는 도전에 직면한 셈이다. 기사 유료화에 이어 베를린에 편집국을 만들고, 기자들이 매일 아침 머리를 맞대고 편집 방향을 정하는 등 혁신을 시작한 것도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리코 기자는 “뉴스가 좋으면 돈 내고 보겠다는 독자들이 존재한다”며 “우리가 생산하는 뉴스를 찾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뿐”이라고 말했다.
성공적인 디지털 유료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디벨트는 지난 2006년 모든 기사를 온라인에 먼저 올리는 ‘디지털 퍼스트’ 전략을 수용했다. 다음날 종이신문판 제작을 위해 기사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작성 즉시 온라인에 먼저 게재한 것이다. 이에 앞서 2002년에는 매체별 뉴스룸을 하나로 통합했다. 일간지 ‘디벨트’와 일요판 ‘벨트 암 존탁’, 그리고 베를린 일간지 ‘베를리너모겐포스트’가 하나의 뉴스룸에서 제작됐다. 이후 웹버전과 모바일, 태블릿판 제작이 포함됐다. 이런 변화들이 층층이 쌓이면서 디지털 공간은 디벨트 뉴스의 처음이자 끝이 됐다.
지난달 8일 찾은 디벨트의 뉴스룸 조용하면서도 활기찼다. 1000㎡ 규모의 뉴스룸은 중앙에 원 모양의 슈퍼데스크 ‘디 아이(The eye)’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국제·스포츠·문화 등 각 부서가 방사형으로 뻗어 있었다. 천장과 벽에 걸린 전광판에는 온라인 웹사이트 화면, 실시간 트래픽, 많이 읽히는 기사 등이 보였다.
뉴스 제작의 핵심인 ‘디 아이’에서 일하는 트래픽 에널라이저 2명은 디지털 시대 디벨트의 현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파일럿’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편집국장 바로 옆에 앉아 어떤 디지털 기사가 많이 읽히는지 추적하기 위해 접속자의 연령·지역 등을 파악하고,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 추천 횟수, 뉴스 호응도 등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디벨트의 디지털 수익모델은 광고수입과 유료구독이다. 배너와 기사에 딸린 동영상을 클릭했을 때 나오는 수익도 있지만 대부분 유료구독에서 나온다. 유료구독을 하면 웹 버전과 태블릿판을 골라볼 수 있는데, 특히 태블릿판은 디지털 뉴스 유료화가 안착하는 돌파구가 됐다.
마리우스 슈나이더 디벨트 비즈니스 편집자는 “디벨트의 끊임없는 디지털 혁신, 기술을 빨리 받아들이고 새로운 문화에 기꺼이 지출하려는 태블릿 유저들의 경향성, 디벨트의 정론지 이미지가 맞아 떨어졌다”며 “태블릿판을 통해 종이신문과 다른 새로운 독자층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태블릿판은 디지털에 올라간 기사를 가공했을 뿐이다. 새로 쓰는 게 아니다. 종이신문도 마찬가지다. 디벨트는 신문용 기사를 별도 제작하지 않고, 디지털 기사를 취사선택해 신문에 그대로 옮겨 싣는다. 취재기자 300명 중 종이신문을 만드는 인력은 12~14명. 종이신문에 맞는 사진을 선별하거나 레이아웃만 한다. 종이신문이 뉴스룸의 한 부서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 유료구독자는 월 12.99유로를 내면 웹버전과 모바일, 태블릿판에서 디벨트의 뉴스를 무제한 볼 수 있다. 태블릿판을 제외한 웹버전과 모바일 뉴스 구독료는 월 4.49유로다. 종이신문 정기구독료가 월 50.90유료라는 걸 감안하면 디지털 구독료는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디지털 퍼스트가 수익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도 구글이나 야후 등 포털의 무료 뉴스를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다. SNS를 통해서도 무료 기사가 광범위하게 유통된다. 하루에도 수천 건씩 쏟아지는 무료 기사가 유료 콘텐츠와 경쟁하는 상황이라서 비즈니스 모델이 녹록지 않다.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자이퉁이나 취트도이체자이퉁 등 독일 유력 일간지가 디지털 뉴스 유료화에 고전하는 것도 이런 환경 탓이다.
마리우스 편집자는 “디지털 환경은 위협이 되고 있지만 반면 더 많은 독자와 만나고 디벨트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사 헨릭 브로더(Henryk R. Broder) 기자의 기사를 예로 들었다. 러시아 전투기가 터키 영공을 무단 침범해 시리아를 폭격한 사건에 대해 헨릭 기자는 터키 영공 침범과 시리아 공습의 함의에 대한 포괄적 분석을 한 장문의 기사를 디지털에 실었다. 러시아가 시리아를 공급했다는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공습의 배경과 의미를 알고 싶었던 독자들은 헨릭 기자의 기사를 찾아 읽었고, 곧바로 디지털 공간을 통해 디벨트의 분석 기사가 퍼져나갔다.
마리우스 편집자는 “종이신문이든 디지털이든 양질의 기사, 좋은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방법 밖에 없다”면서 “디지털에서도 좋은 콘텐츠를 찾거나 필요로 하는 독자들이 있고, 기꺼이 지갑을 꺼낼 용의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말했다.
베를린=글·사진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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