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t'과 'Why'는 사라지고 'You must'와 'Yes'만 남은 MBC

MBC 한 기자의 익명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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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검증된 기자와 PD들이 이리로 저리로 쫓겨났다. 참혹한 현실을 마주한 MBC 한 기자가 기자협회보에 익명의 글을 보내왔다. ‘But’과 ‘Why’는 없고 ‘You must’와 ‘Yes’만 남은 MBC의 일그러진 모습이다.


빈 의자를 향해 맨 앞 사람이 허리를 45도 숙여 공손하게 절한다. 그 자리의 주인은 누구일까? 상사일까, 사장일까, 아니면 더 높은 누군가일까? 그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이 근엄하게 배를 내밀고 서 있다. 마치 ‘다음은 내 차례야’ 하는 듯한 표정이다. 고뇌 비슷한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 뒤에 한 명이 더 있다. 헛기침을 하는지 한 손으로 입을 가리는데, 표정이 뭔가 떨떠름해 보인다. ‘내키진 않지만 나도 인사는 해야겠지?’ 같은 느낌을 준다.


상암동 MBC 신사옥 미디어센터 앞에 설치된 조형물에 대한 이야기다. 그 작품의 이름은 ‘예스맨’이다. 이런 캐릭터들을 형상화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정확하진 않지만 영혼 없이 생존을 위해 ‘예스’만 하는 일반적인 현대인들의 모습 또는 더 큰 권력을 향해 순종하는 권력 지향적 인물을 풍자적으로 그려낸 것이 아닐까 싶다. 예술작품이니 저마다 다르게 해석할 자유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적어도 내게 이 조형물은 현재의 MBC가 이상적으로 추구하는 ‘인재상’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메시지처럼 읽힌다. 그것은 다름 아닌 ‘Yes man’이다.


▲상암동 MBC 신사옥 미디어센터 앞에 설치된 조형물. ‘But’과 ‘Why’는 없고 ‘You must’와 ‘Yes’만 남은 MBC의 일그러진 현실을 보여준다.

저널리즘의 영역에선 본디 법이나 과학 같은 비교적 확고한 준거가 아니라 사람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는 ‘상식’이라는 취약한 준거에 입각해 업무적 판단을 내린다. 그 서로 다른 ‘상식’을 연결해주는 건 바로 ‘팩트’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할 수 없어’라는 상식과 ‘당연히 국가가 어려운 사람들을 돌봐야지’라는 상식이 대충돌할 때 이 둘을 연결할 수 있는 건 예산에서 복지 비율이 차지하는 비중, 다른 나라들과의 비교 등의 사실관계다. 그래서 이 모든 것들을 논의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뉴스룸에선 ‘But..’ 그리고 ‘Why?’ 같은 커뮤니케이션이 활성화돼야 한다. ‘But’은 다른 의견의 자유를 상징하며, ‘Why’는 더 풍부한 팩트를 불러오는 질문이기에 그렇다.


이런 의사소통의 활성화는 ‘공정성’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MBC에선 이러한 공정성의 영역이 점차 좁아졌다. ‘But’과 ‘Why’의 자유를 권력이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좁아지던 영역은 결국 완전히 거세되었다. 거세된 자리에는 ‘You must’와 ‘Yes’ 같은 의사소통만이 남았다. 그 과정에서 해직자 7명이 발생했고 수많은 기자들이 본래의 직에서 쫓겨나 수많은 유배지로 떠돌게 되었다.


근 3년간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어느 정도 내성이 생긴 줄 알았다. 그러나 이번에 단행된 대규모 인사는 ‘상처란 파헤칠수록 아픈 것’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확인시켰다. 이미 당할 만큼 당한 기자들에게 각종 굴욕적 프로그램이 포함된 재교육을 강요하는가 하면, 드라마마케팅부, 예능마케팅부, 신사업개발단 같은 新유배지를 개발해 이들을 배치했다. 그러면서 정작 보도국엔 일할 기자가 없다며 많은 경력기자를 뽑고 있다. 누가 봐도 ‘But’과 ‘Why’를 내쫓고 ‘Yes’만 챙기는 것인데, MBC는 이를 두고 ‘벽을 허문 융복합 인사’니 ‘최적의 인력 재배치’니 하며 홍보하고 있다. 그리고 아직 보도국에 남아 있는 기자들을 향해선 ‘잘 하는 것보다 잘 지내는 게 중요하다’며 계속해서 Yes를 강요하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꼴을 봐야 할까?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내가 기자가 하고 싶어서 MBC에 왔지, MBC맨이 되려고 기자가 된 건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면 꼭 MBC라는 틀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지금도 ‘좋은 기자’를 기다리는 수많은 현장이 있는데, 틀에 구애받지 않고 그곳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같은 생각들 말이다.


얼마 전 故성유보 선생의 영결식 날, 운구를 모신 유족과 추모객들이 동아일보사 앞에서 노제를 지냈다는 기사를 읽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1975년 강제 해직된 지 40년,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세상을 하직하기 직전까지도 끝내 돌아가지 못했던 일터…. 해직 이후 진보적 월간지와 새로 창간한 일간지, 또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다양하게 언론 자유의 길을 넓히는 데 기여하신 고인이지만 그래도 그 마음 한 켠에는 끝끝내 돌아가지 못한 일터에 대해 恨이 남아있으셨구나 싶어서 말이다.

 

우리들의 처지를 감히 그 선배들에게 빗댈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래도 읽어본다. 40년전 자유언론실천선언문을. ‘자유언론은 바로 우리 언론 종사자들 자신의 실천 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하거나 국민 대중이 찾아다 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생각한다. 역사가 전진과 반동을 거듭하되 조금씩이라도 진보하는 게 사실이라면, 40년 만에 반복된 ‘(사실상의) 언론인 대량 해직’의 역사라는 것의 결말은 이들이 MBC가 아닌 여러 곳으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역할로 언론 자유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But과 Why의 MBC’를 끝내 되찾아 시청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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