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권 매진에도 썰렁한 관중석…부실한 운영에 아시아인 축제 빛 바래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인천 아시안게임 취재후기-경인일보 임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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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 임승재 기자

뭔가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한바탕 큰 잔치를 치렀으면 좌우지간 속은 후련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 ‘인천’을 무대로 펼쳐진 아시안게임을 두고 하는 얘기다. ‘아듀 인천!’, 4년 뒤 자카르타에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그렇게 ‘45억 아시아인의 스포츠 축제’는 지난 4일 막을 내렸다.


인천은 이제 1986년 서울과 2002년 부산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세 번째로 아시안게임을 개최한 도시가 됐다. 국제대회를 치러낸 도시의 자긍심, 그리고 그 속에 뿌리내린 성숙한 시민의식과 애향심 등은 장차 인천 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많은 인천 시민이 7년 전인 2007년 4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총회가 열린 쿠웨이트에서 ‘인천’이 호명되던 역사적인 날을 기억할 것이다. 인천이 인도 델리와의 피 말리는 접전 끝에 아시안게임 개최지로 결정됐다. 대회 유치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서명운동에 동참했던 인천 시민의 하나 된 힘이 만들어낸 쾌거였다.


돌이켜 보면 이래저래 사연이 많은 대회였던 것 같다. 정부와 인천시가 주경기장 신축 등을 놓고 갈등을 빚는가 하면, 일각에선 빚잔치를 걱정하며 대회를 반납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숱한 우여곡절 끝에 2014년 9월19일, 드디어 축제의 날이 밝았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의 이목이 인천을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개막식 첫날부터 말썽이 났다. ‘한류스타’로 도배된 잔치였다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이다. 당초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다는 연출팀의 뒤늦은 해명에도 비난 여론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또 대회 기간 주경기장의 하늘을 훤히 밝혀야 할 성화가 갑자기 꺼지는 등 조직위원회의 미숙하고 부실한 대회 운영이 연일 도마에 올랐다.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제 스포츠대회가 또 있었을까 싶다. 제 시간에 안 오는 셔틀버스, 부족한 대회 편의시설, 보안에 구멍 뚫린 선수촌 등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진짜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경기장 입장권이 매진됐는데도 관중석은 텅텅 비어 있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조직위원회가 무턱대고 하루 종일 출입이 가능한 종일권을 판매한 탓이다. 텅 빈 경기장을 눈앞에 두고도 표를 구하지 못해 발길을 돌려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곳곳에서 빚어졌다. 그토록 국민적인 관심과 성원을 부르짖던 조직위원회가 정작 경기장을 찾아온 반가운 손님들을 문전박대한 셈이다. 썰렁한 관중석에 아시안게임 무대의 주인공인 선수들의 사기까지 걱정될 판이었다.


이 뿐인가. 경인일보는 외국인이 인터넷 예매를 하지 못하는 실상을 낱낱이 보도했다. 외국에서 비자·마스터카드를 더 많이 이용한다는 점을 고려치 않고 BC카드로만 웹페이지 결제가 가능토록 해 놨고, 모바일 예매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입력하도록 해놔 외국인에겐 무용지물이었던 것이다. 특히 자국 선수를 응원하려고 먼 타지에서 어렵게 왔지만 경기장 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외국인들의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또 그들이 기억할 대한민국 인천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지난 4일 오후 인천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각국 선수단이 입장하고 있다.(뉴시스)

더 납득하기 어려웠던 것은 “이만하면…”이란 조직위원회 내부의 안일한 태도였다. 부실한 대회 운영을 질타하는 언론 보도가 잇따르던 9월26일 미디어브리핑 현장에 권경상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이 모습을 내비쳤다. 그는 OCA 회장이 자신에게 한 발언을 인용해 대회가 훌륭하게 치러지고 있다는 소신(?)을 밝혔다가 기자들의 원성을 사고 돌아갔다. 


또 정홍원 국무총리까지 직접 나서 썰렁한 관중석을 채울 방안을 주문했지만 조직위원회는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대회가 종반을 향할 때까지 그야말로 꿈쩍도 안하자 경기장 관중석 상황을 고려해 현장 추가 발권을 하는 것으로 인천시가 부랴부랴 교통정리를 할 정도였다.


다행히 고향으로 되돌아가는 각국 선수단은 한결같이 시민 서포터즈의 국경 없는 응원과 12만 자원봉사자의 헌신에 찬사를 보냈다. 그들의 따뜻한 미소가 대회의 부족한 빈틈을 메꾸고도 남았던 것이다.


‘평화의 숨결, 아시아의 미래’라는 슬로건 아래 아시아인이 하나 되는 대회를 추구한 인천 아시안게임. 특히 얼어붙은 남북관계 속에서도 북한 선수단이 참가하면서 OCA 회원국 45개 국가가 모두 출전하는 대회로 의미를 더했다. 또 내전이나 전쟁을 겪고 있는 시리아, 이라크, 팔레스타인 등의 대회 참가 자체는 인천 아시안게임이 지향한 ‘평화’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했다.


무대의 주인공인 45개국 참가 선수단이 값진 땀방울로 엮어낸 벅찬 감동과 환희의 순간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폐막식에선 북한 최고위급 3인방의 전격적인 방문으로 단절된 남북 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최근 정부가 인천 아시안게임 백서 제작을 위한 여론 수렴에 나선다는 소식이 들린다. 아시안게임의 주역이었던 자원봉사자 등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국제대회를 치르게 될 도시들이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철저한 반성이 기록으로 남겨져야 한다. 또 일회성 백서가 아닌, 수조원의 비용을 들인 경기장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그리고 막대한 빚은 어떻게 갚아 나가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인천 시민의 삶과 국제대회를 치른 도시 인천의 모습은 어떻게 변화해 가고 있는지 등을 꾸준히 살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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