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퍼스트'로 확 바꾸자…"사주 의지·경영진 리더십 중요"

디지털시대, 종이신문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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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 언론계 주목
‘수용자 중심 뉴스 제작’ 핵심 가치
한국 언론 디지털 전략 걸음마 수준
융합뉴스룸 목표로 한국·한겨레 꿈틀


“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
1897년 뉴욕타임스는 ‘인쇄에 적합한 모든 뉴스를 다룬다’는 슬로건을 채택했다. 뉴욕타임스의 정신을 나타낸 이 문장은 매호 1면 첫 머리에 찍혀 나왔다. 그로부터 110년이 지나, 뉴욕타임스는 웹사이트에 새로운 슬로건을 소개했다. “All the News That's Fit to Click.”
뉴욕타임스의 슬로건 변화가 상징하는 것처럼 뉴스 미디어를 둘러싼 환경은 최근 수년 새 급속도로 변화했다. 종이신문을 펼치거나 마우스를 ‘클릭’하는 대신 ‘터치’나 음성인식으로 뉴스를 보는 시대가 됐다. 디지털 기술의 눈부신 발전 앞에 구텐베르크 시대의 유물인 인쇄매체들은 속수무책으로 스러져 갔다. 잡지사와 스포츠신문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고, 한때 지하철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무가지도 달랑 하나만 남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 스마트폰 등 디지털 미디어로 뉴스를 이용하는 수용자들이 늘고 있다. 전통적 저널리즘을 따르던 언론들도 미디어 환경 변화에 맞춰 체질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뉴시스·연합뉴스)  
 
젊은층 뉴스소비 종이신문 33.9%

인쇄매체의 위기는 신문도 비켜가지 않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신문 가구구독률은 2006년 40%에서 지난해 20.4%로 7년 사이 반 토막이 났다. 젊은 세대의 신문 이용을 보면 미래는 더욱 암담하다. 2013년 언론진흥재단이 미래의 뉴스 소비자가 될 15~24세 1030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뉴스 유형별 이용률은 컴퓨터의 포털사이트가 84%로 가장 많았고 스마트폰·태블릿PC의 포털사이트 뉴스가 80.5%로 그 다음이었다. 반면 종이신문 이용률은 33.9%에 그쳤다. 1일 종이신문 이용시간은 14.38분이었다.

광고비도 매년 줄고 있다. 인터넷, 모바일 등 뉴미디어 광고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2000년 36.2%이던 신문 광고 점유율은 2012년 16.9%로 절반 이상 줄었다.

이런 추세를 바탕으로 종이신문이 10년 이내에 없어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호주의 미래학자 로스 도슨은 세계 52개국 종이신문에 대해 연도별 사망선고를 내리며 한국의 신문은 2026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종이신문이 살아남더라도 그 수는 미미하며, 지금과 같은 주요 미디어 플랫폼으로서의 영향력은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같은 전망이 현실화 된다면, 적어도 10년차 이하의 신문사 기자들은 미래를 보장받기 힘들어진다. 다시 말해 ‘생존’의 문제라는 의미다.

지난 5월 공개된 뉴욕타임스의 혁신보고서는 전통적 저널리즘의 최강자조차도 이 같은 고민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터랙티브 뉴스 ‘스노우폴(snow fall)’을 선보이는 등 디지털 혁신의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받던 뉴욕타임스도 신문 1면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는 고해성사는 국내 언론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졌다. 혁신보고서는 ‘좋은 기사’를 쓰면 독자가 알아서 찾아봐 줄 것이라는 ‘생산자’ 중심의 마인드가 얼마나 순진한 동시에 위험한지를 일깨운다. 뉴욕타임스의 넬슨 만델라 부음 기사가 허핑턴포스트에서 더 많은 트래픽을 올렸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한겨레 웹사이트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기사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김위근 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과 황용석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가 지적한대로 “뉴스의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고 “뉴스 미디어의 유통 주도권은 박탈당한” 까닭이다. 19세기 말 생산자 중심의 슬로건을 채택했던 뉴욕타임스가 2세기를 지나 처절한 반성을 내놓았듯이 뉴스 제작이 생산자 중심에서 수용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진단이다. 이것이 곧 ‘디지털 퍼스트’의 핵심 가치다.

기자들, 디지털 마인드 갖춰야
국내 언론에서도 젊은 기자들을 중심으로 미래 미디어 환경에 대한 위기감과 문제의식이 확산되면서 변화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가장 먼저 기를 든 곳은 한국일보다. 한국일보는 지난 6월9일 창간 60주년 특집호 기사에서 ‘디지털 퍼스트’ 전략이 2015년 개시되고 2030년에는 종이신문 발행을 접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7월에는 온·오프 통합을 염두에 두고 지면 편집을 7단에서 5단 편집으로 바꿨다. 속보성 스트레이트는 온라인으로 소화하고 지면에선 꼭지 수를 줄여 심층·기획 기사를 강화하는 전략이다. ‘한국일보닷컴’ 사이트를 편집국 자체 솔루션으로 개발, 관리·운영하는 것도 향후 ‘디지털 뉴스룸’을 목표로 한 것이다.

한겨레도 디지털 퍼스트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TF팀을 꾸려 10월까지 지면, 조직, 온라인에 대한 혁신안과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수립할 계획이다. 조직을 통째로 바꾸는 대신 단계적으로 영상취재와 디지털 스토리텔링 강화, 아카이브를 활용한 기사 리패키징 등 먼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면서 궁극적으로 융합 뉴스룸을 지향한다는 목표다.

파이낸셜뉴스는 디지털 퍼스트로 가기 위한 CMS 개편을 추진 중이며, 경향신문은 오는 21일 편집국 전체 워크숍을 시작으로 미래 미디어 전략 수립에 적극 나설 예정이다.

아예 종이신문 발행을 중단한 곳도 있다. 창간 25주년을 맞는 수원일보는 지난달 25일 ‘디지털 퍼스트’를 선언하며 종이신문 발행을 접고 온라인 뉴스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수원일보는 독자 100명 중 96명이 인터넷으로 자사 뉴스를 접한다는 자체 조사 결과에 근거해 이 같이 판단했다. 이호진 대표이사는 “종이신문 인쇄중단으로 절감되는 자본·인력 등을 인터넷신문에 집중, 지역 언론의 새로운 성공 모델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혁신의 바람은 신문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지는 못하고 있다.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인 언론사들도 아직은 초보적인 걸음마 수준이며, 신문 시장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다수의 신문들에선 가시적인 움직임이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언론계 한 관계자는 “신문시장에서의 기득권을 놓지 못하는 것”이라며 “디지털에선 1등 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진정한 ‘디지털 퍼스트’를 위해선 조직원 개개인이 ‘디지털 마인드’를 갖추는 것뿐 아니라 변화를 주도하는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위근 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의사 결정권자의 현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겨레 혁신 TF 3.0’ 상근을 맡고 있는 이봉현 경제국제에디터도 “사주의 의지와 경영진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며 “구성원들은 변화를 열망하면서도 현상을 유지하려는 속성이 있는데 변화의 필요성에 대해 끊임없이 설득해가는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디지털 퍼스트는 이미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봉현 에디터의 말이다. “음악을 공짜로 다운로드 받는 게 당연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돈 내고 받는 게 일반화 됐다. 당장 돈이 안 된다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디지털 퍼스트는 당위적인 의무다.”



가디언, 디지털 매출 인쇄 분야 넘어서
WP, 투자확대 등 디지털 프로젝트 진행
해외미디어 실험과 도전


디지털 혁신의 대표적인 선두 주자는 영국의 가디언이다. 2001년 뉴스를 분단위로 생중계하는 ‘라이브 블로그’ 서비스를 신문사 최초로 선보인 이후 꾸준히 변화와 혁신을 시도, 2011년 아예 ‘디지털 퍼스트’를 선언하며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중앙일보에 따르면 가디언 웹사이트 방문자는 2010년 약 4000만 명에서 2012년 6790만 명, 이듬해엔 7830만 명으로 늘었다. 지난 3월엔 방문자 수가 1억 명을 돌파했다. 2012~2013년엔 디지털 분야의 매출이 인쇄 분야를 처음으로 앞서기도 했다. ‘파이어 스톰’에서 최근 ‘1차 세계대전’까지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인터랙티브 뉴스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가디언의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저널리즘을 위한 최상의 디지털 플랫폼”이라는 독자 평가가 달려 있다.

경영난으로 위기를 겪다 지난해 아마존닷컴 창업자 제프 베조스에 인수된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디지털 혁신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6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리더십 연수 과정으로 워싱턴포스트를 방문한 이봉현 한겨레 에디터는 제프 베조스에 인수된 뒤 워싱턴포스트에서 디지털 전환을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인수 뒤 임원진에 “많이 읽히는 신문을 만들라”는 특명을 내린 제프 베조스는 디지털 분야 투자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24시간 기사를 만드는 편집국을 위해 50명을 새로 고용하고, 편집국에 25명의 컴퓨터 엔지니어를 배치해 기자들이 다양한 디지털 스토리를 만들도록 돕는다. 또한 뉴스가 배포되면 거기서 끝나지 않고 독자의 반응을 살핀 뒤 이를 통합해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편집국 구조와 회의 운영 방식도 확 바뀌었다. 매일 오전 9시30분에 열리는 회의에서 웹사이트를 염두에 두고 온라인 출고 계획을 세운 뒤, 디지털 뉴스에서 얻은 성과를 종이신문에 적용한다. 디지털이 첫 번째, 신문이 두 번째다.

워싱턴포스트의 미래는 디지털을 지향하지만, 종이신문에 대해 갖는 책임감도 크다. 여전히 수익의 4분의 3이 종이신문에서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포스트는 향후 1만년을 바라볼 만큼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투자하고 있다. 더 이상 전통적인 미디어 회사와의 경쟁에 신경 쓰지 않는 대신 소셜미디어를 가장 큰 경쟁자로 여기고 있다. “그 전에는 향후 2~3년 동안 어떻게 생존하는가가 관건이었다면, 지금부터 10~20년 안에 디지털 독자를 얼마나 많이 얻을지가 관심이다.” 김고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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