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출석 기다리던 검찰 3주간 허송세월…잠적하자 허둥지둥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검찰 수사 취재-인천일보 박범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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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천일보 박범준 기자  
 
검찰이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비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군요.
세월호 사고가 발생된 지 5일째인 지난달 20일 인천지검에는 유씨 일가 비리 특별수사팀이 꾸려집니다. 대참사에 따른 국민적 공분이 일자 김진태 검찰총장이 직접 청해진해운을 관할하는 인천지검에 수사 지시를 내린 것이죠.

검찰은 비정규직 선장과 안전을 무시한 선박 구조 변경, 화물 과적 등 수익 극대화를 위한 청해진해운의 비정상적인 운영이 세월호 사고의 간접적 원인이었다고 보고,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유병언씨와 자녀, 측근들을 수사 선상에 올린 겁니다.

이날 오후 5시쯤 주말이라 회사에서 일찍 마감한 뒤 서울에 있는 아내를 데려오려고 고속도로를 타려던 순간, 문자가 왔습니다. 법조 출입 기자단의 간사가 보낸 것인데, 이날 오후 6시30분 인천지검 12층 회의실에서 세월호 관련 기자회견을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곧바로 핸들을 돌려 인천지검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인천지검의 유씨 일가 수사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바로 며칠 전 인천지검 특수부가 발표한 ‘BRC 조성 사업 비리 의혹’ 수사 결과가 ‘부실 수사’, ‘용두사미 수사’, ‘몸통은 손도 못 대고 깃털만 뽑은 수사’라는 지적을 받았던 터였기 때문입니다. ‘지역 비리도 시원스럽게 해결하지 못했는데 전국적 이목을 끄는 사건을 해결할 수 있으려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우려를 의식한 듯, 인천지검은 막대한 수사력을 동원하는 등 처음부터 강한 수사 의지를 보입니다. 수사도 ‘속전속결’로 진행됐습니다. 유씨의 측근이 한두 명씩 검찰에 불려 나갔고, 구속자 수가 증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새 유씨 일가 소환이 세간의 관심사로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걱정이 들기 시작하네요. 해외에 거주하는 유씨의 차남과 장녀, 차녀가 검찰 소환에 불응하고 잠적하면서 국내에 있는 유씨와 장남도 도망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죠.

인천지검 9층에서 토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진행하는 수사 상황 티타임에서 검찰은 유씨 부자의 도주를 우려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걱정할 거 없다. 수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취지로 답하곤 했습니다. 지난 12일까지 약 3주간 그랬습니다.



   
 
  ▲ 세월호 실소유주 유병언(73) 전 세모그룹 회장 부자에 대한 현상 수배가 내려진 가운데 검찰이 유 회장의 도피를 도운 혐의로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 신도를 체포해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25일 오후 인천지방검찰청 앞에서 신도들이 항의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검찰은 13일 갑작스럽게 유씨에게 출석 통보를 했다고 알립니다. 그리고 유씨의 출석을 기다리는 검찰은 마치 변심한 애인이 되돌아오길 바라는 사람처럼 “유병언씨가 출석할 것으로 믿는다”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합니다.

그러나 유씨는 출석 요구 시한인 16일 오전 10시 전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잠적한 것이죠. 유씨의 4자녀도 이미 잠적한 상태였고요. 깃털만 열심히 뽑던 검찰이 몸통인 유씨의 잠적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이후 검찰은 20일에도 당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 기일이 잡힌 유씨가 자진 출석하길 기대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유씨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분노한 검찰은 유씨를 끝까지 추적하고 검거해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검찰은 현재까지 대규모 검거 인력을 가동해 유씨 부자를 쫓고 있지만 아직 성과는 거두지 못한 상황입니다. 유씨의 은신처로 알려진 경기 안성의 금수원, 전남 순천의 한 휴게소 음식점 등을 차례대로 덮쳤지만 유씨는 매번 종적을 감춘 뒤였습니다.

어쩌면, 유씨 부자는 수사 개시 이후 검찰 수사를 피하기 위한 철저한 준비를 마쳤을지 모릅니다. 문제는 검찰이 그런 부분을 미처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몸통을 눈앞에서 놓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이죠. 자꾸 이런 말이 떠오르네요. ‘뛰는 검찰 위에 나는 유병언이 있다.’

또, 검찰은 유씨를 잡기도 전에 천하의 악당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데 그 의중이 궁금합니다. 유씨에 대해 검찰과 법에 도전하는 극악의 부패 기업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고, 5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현상금을 유씨에게 걸기도 합니다.

혹시 대참사로 인한 이 총체적 난국을 유씨 일가로 풀어내려는 것은 아니겠죠? 유씨를 잡는다고 제2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유씨가 비리를 저지를 수 있게 만든 병폐적인 사회 구조, 즉 근본적인 문제에 메스를 대고 도려내지 않는 한 제2의 유씨 일가도 참사도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겁니다. 인천일보 박범준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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