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죽은 게 구경거리냐" 유가족 절규에 취재 못하고 돌아서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현장 취재 후기-매일신문 이채수 장성현 박승혁 신동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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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이채수, 장성현, 박승혁, 신동우 기자.  
 
여느 때와 다름없는 느긋한 평일 밤이었다. 지난달 17일 밤 10시, 회사 번호가 찍힌 전화벨이 울리기 전까지는.
“경주에 리조트가 무너져 수백명이 매몰됐단다!” 다급하게 외투를 여미고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속도로를 달리면서도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았다.

산 정상으로 향하는 진입로는 이미 소방차와 경찰차, 취재 차량들이 뒤섞여 난장판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2.5km 가량 떨어진 길가에 주차를 하고 종종걸음을 쳤다. 현장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사고가 난 체육관은 폭격을 맞은 듯 폭삭 주저앉아 있었다. 구조대원들은 소형 굴착기에 줄을 매고 샌드위치 패널을 들어 올리고 삽으로 눈을 퍼내며 실종자들을 찾고 있었다. 끊임없이 눈보라가 얼굴을 후려쳤다. 눈이 아니라 우박처럼 단단한, 돌 조각이 때리는 느낌. 물기를 머금은 습설은 쉬지 않고 쏟아졌다. 눈에 젖은 소방관들의 몸에서는 허연 김이 피어올랐다.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야돼요!” “지금 들어 올리다간 2차 붕괴가 올 수도 있어요!” 중장비 기사와 구조대원 사이에 고성이 오갔다.

체육관 입구에 누군가 주차해둔 승용차는 크레인 진입을 방해했다. 구조대원들은 뒷좌석 창문을 깨고 들어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었고, 10여명이 차를 번쩍 들다시피하며 체육관 옆으로 밀어냈다. 급하게 도착한 3t 규모의 소형 크레인으로 일부 샌드위치 패널을 밖으로 들어냈고, 새벽 3시가 돼서야 대형 크레인이 도착했다. 하지만 뒤늦게 발견된 피해 학생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이후 더 이상의 희생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사상자들이 이송된 울산 21세기좋은병원 응급실은 바쁘게 뛰는 의료진과 취재진이 마구 뒤섞였다. 응급실의 병상 8개에는 다친 학생들로 넘쳐났다. 침대가 부족해 주사실이나 내시경실 등 빈 자리면 어디든 환자를 눕혀야 했다. 간호 인력도 모자라 가족들이 직접 침상을 끌고 각종 검사실로 이동할 정도였다. 다른 병상에 비해 인적이 드문 병상을 찾았다. 반듯하게 누워 있는 환자의 모습이 보였다.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얼굴. 고 김진솔(19·여·태국어과)양의 시신이었다. 옆 병상에서 비명같은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또 다른 희생자인 고 강혜승(19·여·아랍어과)양의 가족이 막 도착한 것이다. 강 양의 부모는 ‘아직 안돼! 어떻게 해줘봐!’라며 울음을 토해냈다. 의료진이 병상을 확보하기 위해 강 양의 시신을 영안실로 옮기려하자 어머니는 비명을 지르며 뿌리쳤다.



   
 
  ▲ 지난달 17일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사고 피해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사진=매일신문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부상자들을 대상으로 당시 정황 등을 취재한 뒤 돌아왔지만 강 양의 시신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취재진의 카메라가 강 양 곁으로 다가오자 아버지는 “사람이 죽었다고! 구경거리냐!”며 고함을 질렀다. 당황한 기자들이 자리를 피했다. 카메라를 들이댔던 기자도 미안한 마음에 얼른 자리를 피했다. 취재진이 줄고 한적해진 뒤 다시 강 양의 빈소를 찾았다. 강 양의 아버지는 대뜸 들고 있던 물건을 던지며 화를 냈다. 위로의 말을 건네고 영안실 밖으로 나왔다. 가늠하기 힘든 고통을 겪는 가족들과, 아픈 상처를 헤집고 있음을 알면서도 다가서야 하는 기자. 한모금 담배 연기가 유난히 씁쓸하게 느껴졌다.

참사는 이튿날인 18일 오전이 되어서야 점차 수습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고대책본부에는 높으신 분들이 방문하실 때마다 별다를 것 없는 브리핑이 반복됐다. 자리를 뜨지 못한 기자들은 바닥에 쓰러져 잠들거나 피곤한 눈을 비비며 추가 취재에 열중했다. 눈처럼 하얗게 밤을 새우고 현장으로 나온 지 22시간 만에야 숨을 돌렸다. 구조 작업은 종료됐고, 사고 원인과 책임을 가리는 일이 남았다. 이날은 끔찍했던 대구 지하철참사가 일어난 지 꼭 11년 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 이후 대구경북에서 일어난 가장 큰 인명사고이기도 했다.

경찰 수사가 계속되면서 붕괴 사고가 인재(人災)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설계·시공·감리 등 건축 당시 모든 분야에서 부실시공이 이뤄졌다. 설계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적설하중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 시공 과정에서 기초 터닦기도 엉망이었다. 용접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용접 작업 방식을 구체적으로 나타내는 도면인 숍드로잉(shop drawing·공작도)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구조물의 안전도를 확인해야 할 건축구조기술사는 확인서 도장을 아예 시공업체에 맡겨놨을 정도였다. 업계에서는 이런 행태가 ‘관행’이라고 했다. ‘절차가 번거로워서’, ‘비용이 많이 드니까’, ‘안전에 큰 문제가 없으니까’. 눈 앞의 이익을 위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관행’은 결국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범행’의 씨앗이 됐다.

매일신문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참사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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