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유신 언급 작품 연재 거부

제280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2 /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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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  
 
작고한 문학평론가 김현은 <한국문학의 위상>(문학과지성사, 1977)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배고픈 거지를 구하지 못한다. 그러나 문학은 그 배고픈 거지가 있다는 것을 추문으로 만들고, 그래서 인간을 억누르는 억압의 정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이 말은 오늘의 현실에서도 여전한 울림을 갖고 있다. 그런데 문학이 억압의 정체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판관이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억압의 주체가 돼버린 참담한 사건이 지난해에 벌어졌다.

월간 문예지 ‘현대문학’은 지난해 9월호에 현직 대통령의 수필을 찬양한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의 글을 실었다. ‘현대문학’은 박근혜 대통령이 1990년대에 쓴 수필 4편도 함께 수록했다. 최고 권력자 또는 그 측근들을 수신 대상으로 삼은 ‘박비어천가’임에 분명해 보였지만 확증이 없었다. ‘현대문학’으로서는 ‘원로 문학평론가가 보내온 글을 실었을 뿐’이라고 변명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하여, 입맛이 씁쓸했지만, 이 사건은 우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이것이 우발적인 해프닝이 아니라 ‘현대문학’ 측의 적극적 의지가 개입된 사건이었음이 드러난 것은 몇 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이었다. 201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예심이 그 계기였다. 심사를 위해 모인 젊은 문인들은 그 즈음 그들 사이에 화제가 되고 있던 소설가 이제하씨의 페이스북 글에 대해 말했다. ‘유신’과 ‘87년 민주화항쟁’이라는 단 두 단어 때문에 ‘현대문학’ 측이 이씨의 소설 연재를 거부했다는 얘기였다. 그들은 또 ‘현대문학’ 9월호에 실린 이태동 교수의 글을 비판적으로 언급한 한 비평가의 글에 대해 ‘현대문학’이 수정 요구를 했다는 얘기도 했다.

보도의 규모를 이틀 연속 1면 기사로까지 키울 수 있었던 결정적인 단서는 한윤정 경향신문 문화부장이 확보하고 있던 소설가 정찬씨의 이메일이었다. 정씨도 정치적 언급을 이유로 연재를 거부당했다. 그의 제보를 통해 소설가 서정인씨도 같은 일을 겪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문제의 9월호 발간을 전후한 시점에 벌어졌다.

경향신문 보도 후 일어난 젊은 문인들의 ‘현대문학’ 거부 선언, ‘현대문학상’ 수상 문인들의 수상 거부, ‘현대문학’ 주간과 편집위원들의 전원 사퇴는 뒤늦긴 했지만 마땅하고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이 보도는 시작부터 끝까지 한윤정 부장의 두뇌와 손끝에서 이뤄졌다. 바이라인을 단 기자가 한 일은 일부에 불과하다. 문화부 선배들은 어리숙한 후배 기자를 시종일관 격려하고 다독여주었다. 부장을 포함한 문화부 선배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경향신문 정원식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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