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기자협회 제작거부 결의
길환영 사장.이사회 대선검증단 보도 개입에 반발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2012.12.07 10:34:14
KBS 기자들이 KBS 이사회와 길환영 사장의 대선 방송 개입과 관련, 보도의 독립성과 제작 자율성 침해에 반발하며 제작거부를 결의했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기자들이 제작거부에 들어가는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어서 파문이 예상된다.
KBS 기자협회는 6일 저녁 7시 긴급 기자총회를 열고 ‘대선 공정방송 수호를 위한 제작거부’를 의결했다. 사고·휴직자 등을 제외한 재적 회원 483명 가운데 183명이 투표에 참여했고 174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반대는 8표, 기권은 1표였다.
기자협회는 “대선후보진실검증단에 대한 길환영 사장의 부당 개입을 규탄하고 대선 관련 보도의 공정성 확보와 제작자율성을 수호하기 위해 기자들은 제작거부를 의결하며 시기와 방법을 비상대책위원회에 일임한다”고 밝혔다. 기자협회는 이르면 7일 중 비대위를 열어 제작거부 돌입 시기와 방법을 결정하기로 했다.
KBS 기자들의 제작거부 결의는 4일 방송된 ‘2012 대선후보를 말하다’에 대한 KBS 이사회의 문제제기와 이에 따른 김진석 대선후보진실검증단장의 문책성 사퇴가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KBS 이사회 여당 이사들은 지난 5일 정기 이사회에 김진석 단장을 출석시켜 ‘대선후보를 말하다’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에게 불리한 편파방송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길환영 사장은 “게이트키핑에 문제가 있었다”, “재발방지에 힘쓰겠다”며 사실상 김진석 단장에게 책임을 묻는 발언을 했고, 김 단장은 6일 오전 사의를 표명하고 휴가에 들어갔다.
이에 기자들과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다. 대선후보진실검증단 소속 기자들은 성명을 내어 “이사회와 사장은 정치적인 충성심에 눈이 멀어 공영방송을 망치고 KBS 기자정신과 저널리즘을 모욕하는 짓을 당장 멈춰라”라고 성토했다. KBS 기자협회와 PD협회 등 13개 직능단체들도 공동 성명을 내고 “공영방송을 망치는 이 같은 작태를 두고 볼 수 없다”며 길환영 사장 퇴진과 KBS 이사회 해체를 주장했다.
함철 KBS 기자협회장은 “이사회는 KBS의 경영을 관리 감독하는 최고 의결 기구”라며 “책임자를 불러 방송 내용을 문제 삼는 것은 불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규정한 방송법 제4조2항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이사회를 방송법 위반으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자들의 문제의식은 이번 사태에서 한발 더 나아가 대선 방송과 제작 자율성에 대한 총체적 위기감으로 확산돼 있다. 함철 회장은 “대선 방송을 무력화 하려는 시도가 이번 사건으로 본격화되었다”며 “이는 대선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대로라면 대선 보도를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크다”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제작거부는 외길 수순”이라고 강조했다.
새노조 김현석 위원장은 “대선후보진실검증단에 대해 새누리당이 문제제기를 하자 그들이 임명한 이사장과 이사들이 나서서 방송 내용을 문제 삼고 나선 것은 새누리당이 시켜서 그렇게 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특정 정파의 추천을 받은 이사장과 사장의 이 같은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노조는 이번 사태에 대한 이사회와 사장의 사과와 재발방지 서약, 김진석 단장의 사의 반려를 요구하고 있다.
한편 기자들의 제작거부 의결과 관련해 KBS 보도본부 국장단은 “제작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수호하려는 기자들의 충정을 이해한다”면서도 “성숙된 사고를 갖고 자제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국장단은 6일 밤 공식 성명을 통해 “대선을 앞둔 민감한 시기에 기자협회가 제작 거부 결의를 한 것에 대해서는 유감을 표한다”면서 “자칫 정치권에 이용될 수 있고 국민적인 동의도 받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근 KBS 이사회가 제작의 자율성과 독립성 훼손의 논란에 휩싸이게 된데 대해서도 우려를 표한다”면서 “이사회는 제작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침해하려는 외부의 시도를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어주기 바라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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