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로 친정 복귀한 강병국 전 경향 노조위원장

일방적 감원 실망 사직...언론노동전문 변호사로 제2인생

노조위원장을 역임했던 한 기자가 93년 사직한 이후 8년만에 다시 그 신문사로 돌아왔다. 물론 상황은 변했다. 신분은 기자에서 변호사로 바뀌었고, 돌아온 자리는 경향신문 감사였다.

강병국 변호사는 지난 18일 경향신문 주총에서 임기 3년의 새 감사로 선임됐다. “사원주주회사이다보니 주주들이 다 동료, 선후배들이고 이들이 회계·업무감사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해왔다. 10년 6개월 간 몸담았던 친정이기도 해 흔쾌히 응했다”는 것.

그러나 강 변호사의 ‘친정’에서의 생활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82년 기자로 첫 발을 들인 이후 사회부, 문화부, 경제부 등을 거치면서 5년의 시간이 흘렀고 ‘6월 항쟁’의 기류를 타고 경향신문에도 88년 노조가 창립됐다. 당시 강 기자는 초대 노조 조사연구부장을 맡아 럭키금성과 합작 협상에서 불거진 경영진 퇴진운동, 5공 청산 특위 등 노조활동에 참여했다. 이같은 활동들이 이듬해인 89년 한화와 합작을 추진하던 경영진들에게 걸림돌로 지목돼 초대 노조 집행부 11명 가운데 5명이 강제해직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경향 해직 5인’ 사태였다. 복직이라는 최대 목표는 92년까지 흘러왔다. 누군가 그 목표를 부여잡아야 했다.

결국 강 기자는 92년 5기 노조위원장을 맡았고 지상과제를 이뤄냈다. “6월 25일 3명 복직”, “7월 4일 2명 복직”, 지금도 날짜까지 꼼꼼히 기억하고 있을 만치 개인적으로도 의미 깊은 일이었다. 그러나 복직으로 일궈낸 노사 화합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같은 해 9월부터 사측이 장기근속자들에 대한 감원을 시작했다. 한화측이 대주주로 들어온 지 1년 반, 양수도계약서에도 명시되어 있던 고용승계 조항을 무시한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모처럼의 화합 분위기를 감원기회로 악용하는 경영진들의 행태를 두고 볼 수 없었고, 사원 대표자격으로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위원장 임기를 마치자 직간접적으로 압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복직 과제를 풀었으니 떠나도 되겠다고 판단했다.”

강 기자는 93년 3월 사표를 제출했고, 잠시 출판사에도 몸담았다가 본인 말에 따르면 “글 쓸 때 타이틀 하나 얻고 싶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선회”한 것이 사법고시였다. 물론 말 그대로는 아니다.

한차례 실패를 딛고 98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후 올 1월 사법연수원을 졸업하며 결정한 길이 언론 및 노동관련 소송 전문 변호사.

“언론계는내 열정과 정열을 바친 곳이기도 하고 독립언론이라는 경향신문의 기틀 자체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본다. 감사로 있는 동안 능력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강 변호사는 현재 언론노조 자문 변호사로 내정돼 이미 활동을 시작했다.

기자로서, 노조위원장으로서의 경험은, 그렇게 다시 개화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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