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렙법 입법을 위한 여야 간 협상이 막판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은 물론 언론단체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여야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보도·편성과 광고영업 분리, 동일서비스 동일규제, 광고취약매체 지원근거 마련’ 등 3대 원칙에 합의하고 미디어렙법 입법을 연내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종합편성채널의 미디어렙 의무 위탁 여부와 방송사의 최대 지분율 등 일부 쟁점은 여전히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어 이번 주말이 협상의 고비가 될 전망이다.
정치권 뿐 아니라 ‘미디어렙법 연내 처리’ 문제를 두고 지역방송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미묘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이 ‘종편 미디어렙 의무 위탁 2년간 유예’안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양보를 해서라도 연내 입법을 관철해야 한다는 현실론과, 해를 넘기는 한이 있더라도 타협은 절대 불가하다는 원칙론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원칙론을 편 쪽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다. 민언련은 22일 ‘미디어렙법 야합 말라’는 제목의 논평을 통해 “조·중·동 종편은 유예 없이 미디어렙에 의무위탁 되어야 한다”면서 “미디어렙법 핵심 사안들이 한나라당의 거부로 관철될 수 없다고 해서 결코 원칙을 접고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민주통합당을 압박했다. 그러면서 “최악의 경우 내년 총선 이후를 도모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주장했다.
연내 입법을 위해 원칙을 훼손하면서까지 한나라당과 타협하기보다는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을 확보한 뒤 종편의 미디어렙 의무 위탁 등 원칙에 입각한 미디어렙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방송협의회와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다른 반응을 보였다. 지역방송협의회는 23일 ‘미디어렙법은 반드시 연내에 처리돼야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민언련의 주장을 “협상의 시곗바늘을 몇 달 전으로 돌리는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연내 입법이 무산되면 이미 광고를 팔고 있는 SBS 미디어홀딩스의 무허가 판매회사의 행보에 날개가 달린다. 또한 호시탐탐 직접영업을 노리고 있던 서울MBC가 탐욕의 기지개를 켜게 될 것”이라며 “이런 움직임이 불 보듯 뻔한 데도 종편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하여 입법을 무산시키려 한다면 이는 엄청난 패착”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미디어렙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그동안 언론노동자들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명분과 더불어 현재의 정치지형과 협상경과 등 현실적 고려도 할 수 밖에 없다”며 “민주당은 차선이라도 선택해서 최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연대도 비슷한 입장이다. 언론연대는 23일 ‘민주통합당은 ‘연내 입법 최우선’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을 뒤집지 말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방송 광고 시장이 일시에 난장판이 되는 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일부 부족하고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더라도 연내 입법을 하고 갈 것인가”라며 민주통합당의 결단을 촉구했다.
이들은 “애초 우리의 목표도 연내 입법은 아니었다. 내년 총선에서 의회권력의 지형이 바뀐 뒤에 얼마든지 제대로 된 미디어렙법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봤다. 그러나 대통령선거를 앞둔 내년 정치일정상 법안을 제정하는 것은 극도로 어렵다는 게 민주당의 판단이었다”면서 “이런 판단을 존중했고, 방송 광고 시장이 난장판이 되는 것보다 일부 양보를 하더라도 연내 입법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봤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SBS 미디어홀딩스가 자회사 렙 설립 작업을 진행하고 있고 서울MBC 역시 자회사 미디어렙 설립 작업을 상당 부분 진척시켜 놓고 있는 현 상황에서, 그리고 종편에 대해 무기한의 광고 직접영업 백지 위임장을 주지 않기 위해 최우선해야 할 것은 ‘연내 입법’일 수밖에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언론노조는 다소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장지호 언론노조 정책국장은 “미디어렙법 연내 입법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면서 “다만 한나라당이 현재 내놓은 협상안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여야 간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미디어렙법 연내 처리와 종편의 미디어렙 의무 위탁 모두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노조는 앞서 22일 발표한 성명에서도 △종편의 미디어렙 즉시 포함 △방송지주회사 출자금지 및 특정 방송사의 과도한 지배력 행사 방지 △크로스미디어 판매금지 등 기본 원칙을 거듭 밝히며 “미디어렙법이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 간의 ‘야합’으로 입법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한나라당에 대해 “장기 집권을 위해 ‘정치적 공범’인 조·중·동 종편의 눈치나 보는 한심한 행태에서 벗어나, 다수당으로서 이 나라의 언론을 지킨다는 책임 있는 모습으로 돌아와 협상에 임하라”고 촉구하며, 민주통합당을 향해서도 “한나라당의 정략적 협상안에 휘말리지 말고, 제대로 된 미디어렙법을 입법하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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