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장악의 교과서' 베를루스코니의 몰락

미디어로 집권하고 권력 유지…"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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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2009년 7월 이탈리아 라퀼라에서 열린 주요8개국(G8) 정상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신화/뉴시스)  
 
미디어제국의 바벨탑이 주저앉기 시작했다. ‘언론재벌’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12일 이탈리아 총리직에서 공식 사임했다. 총리 관저를 떠나는 순간까지도 여유를 보인 그도 숱한 성추문과 비리 의혹, 이탈리아의 경제 붕괴를 배겨내지 못했다.

자본권력과 정치권력을 통일했던 그는 ‘언론장악의 교과서’였다. 20세기형 산업인 건설로 자본을 마련해 언론을 지배하고, 그 힘으로 집권한 뒤엔 ‘미디어크라시’로 권력을 유지했다.

베를루스코니도 시작은 미미했다. 음악을 좋아했던, 밀라노의 이름없는 은행원의 아들이었을 뿐이다. 그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CEO 출신 정치인으로 성장한 데는 타고난 이윤 감각이 작용했다. 젊은 시절 아파트 사업을 성공시키는 등 건설·부동산업에서 큰돈을 모았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1960년대부터 지역 방송사를 하나둘 사들여 방송·신문·출판·엔터테인먼트를 넘나드는 미디어재벌로 입지를 굳혔다. 그가 소유한 종합 미디어그룹 ‘미디어셋’은 국내 민영채널 7개 중 카날레5, 이탈리아1, 레테4 등 공중파 3개 채널을 거느렸다. 일간지 ‘일 지오르날레’는 동생이 사주다.

차곡차곡 이탈리아를 잠식하던 그는 미디어 자본권력을 정치권력으로 상승시켰다. 1994년 ‘전진 이탈리아당’을 창당해 집권하면서 부패 스캔들로 허덕이던 우파의 구세주로 등장했다. 이탈리아 대중들은 그의 CEO로서의 전설에 매료됐다. 부패한 우파, 무능한 좌파, 민생고에 지친 대중들은 방송과 엔터테인먼트로 인지도를 높여 ‘제3세력’으로 포장된 그를 선택했다.

그가 잡초처럼 살아남았던 힘 역시 ‘언론 통제’에서 나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03년 그나마 베를루스코니를 견제해 온 공영방송 RAI의 이사회에 총리의 개입을 합법화하는 미디어 법을 야당의 불참 속에 통과시켜 ‘미디어제국’ 건설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베를루스코니의 언론들은 그를 호위하는 ‘로마병정’이었다. 2009년 그의 별장에서 미녀들과 알몸파티를 벌였다는 추문을 스페인 언론이 먼저 보도한 기현상도 이래서 나왔다.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은 천문학적 금액의 소송으로 숨통을 조였다. 성추문을 보도한 좌파 일간지 ‘라 레푸블리카’ ‘루니타’에 300만 유로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가 “언론자유가 위협받고 있다”며 소송을 취하하라고 권고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베를루스코니 호’는 진정 침몰했을까. 이탈리아는 이 기회에 ‘신 질서’를 이룰까. 마우리지오 비롤리 미 프린스턴대 교수는 10일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 이렇게 썼다. “이탈리아에는 역동적인 시민의 힘을 통일시킬 수 있는 정치적 지도자가 필요하다. 그런 인물이 나타나기 전까지 ‘미스터 베를루스코니’의 이탈리아가 끝났다고 주장하기엔 이르다.” 장우성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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