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망과 존폐는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기자협회 온라인칼럼[엄민용의 우리말글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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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민용 경향신문 엔터테인먼트부 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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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안 전 의원은 4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천하의 도요타도 작년 GM에 이어 순간의 문제로 존망이 위협받는 사태를 맞았다’고 말했다.”(노컷뉴스)
“더 이상 보유했다가는 그룹 존망에 위협이 될 것이라 판단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대우건설을 매물로 내놓았다.”(시사저널)
따위 예문에서 보듯이 ‘존망이 위협받다’나 ‘존망이 흔들리다’ 등의 표현을 자주 접합니다. 하지만 ‘존망’은 위협받지 않고, 흔들리지도 않습니다. 왜냐고요?
‘존망(存亡)’은 “존속과 멸망 또는 생존과 사망을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존속과 멸망, 혹은 생존과 사망이 함께 위협받거나 흔들릴 수는 없습니다. 존속과 생존이 위협받거나 흔들리는 것이지, 멸망과 사망이 위협받거나 흔들린다는 표현은 아주 어색합니다.
‘존폐’도 마찬가지입니다. ‘존폐(存廢)’ 역시 ‘존속’과 ‘폐지’를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시멘트 산업이 과잉 생산으로 구조조정을 겪으며 기업의 존폐를 걱정해야 했던 직원들이 맞섰다”(한겨레21) 따위처럼 쓰곤 합니다.
‘폐업’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존속’을 걱정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또 ‘존폐의 위기’도 ‘존립을 위협받다’ ‘폐지될 위기를 맞다’ 따위처럼 문장 속 의미에 맞게 정확히 써야 합니다.
이들 외에 ‘찬반’ ‘생사’ 등 양면성을 지닌 말 중에는 뒤에 오는 말에 따라 의미가 이상해지는 표현이 많습니다. 이런 말을 쓸 때는 한자의 뜻을 잘 살펴보고, 전체 의미에 맞게 정확히 써야 합니다.
<엄민용 경향신문 엔터테인먼트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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