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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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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식품 수입국이다. 반면 미국은 세계 최대의 식품 수출국이다. 수입국과 수출국의 이해(利害)가 상반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수입국은 식품안전 문제에 관한한 최대한 까칠할 필요가 있다. 아니 권리가 있다. 그래야 국민이 더 안전한 식품을 섭취할 수 있다. 전체 에너지의 70% 가량을 해외 식품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국민 입장에선 더욱 그렇다.
정부, 미국의 기관자료 지나치게 의존
그런데 우리 정부가 식품안전 이슈를 다룰 때 수입국인 미국 기관의 자료나 결정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특정 정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누대로 그래왔다. 특히 미국과 EU(유럽연합)이 식품안전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을 때 우리는 대체로 미국 편에 서 왔다.
최근 중국에서 일어난 독돼지 사건의 주범인 락토파민에 대해서도 우리는 관대하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1999년 락토파민의 시판을 허가했다는 이유에서다. 중국에선 독돼지의 독, 미국에선 성장촉진제로 허용된 락토파민은 미국ㆍ한국ㆍ캐나다ㆍ호주ㆍ브라질 등 20여 개국에서 사용 중이다.
이와는 달리 유럽연합(EU)ㆍ중국ㆍ대만ㆍ말레이시아 등 전 세계 150개국 이상이 락토파민을 가축사료에 넣는 것을 금지했다. 여러 나라들이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데도 우리는 “미국 FDA가 허가했다”는 병풍 뒤에 숨는다.
10여 년 전 우유내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 M1의 허용기준을 놓고 미국과 EU가 팽팽히 맞설 때도 미국 입장에 동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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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이 `포르말린 사료 우유' 파문과 관련해 시중유통 중인 우유에 대해 포르말린 검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가운데 지난달 29일 서울 한 대형마트의 우유 매장에 '포르말린 사료 우유'를 판매하지 않는 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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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플라톡신 M1은 간암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 B1에 오염된 사료를 먹은 젖소의 우유에서 유래하는 독성물질로 M은 우유(milk)를 뜻한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선 아플라톡신 M1의 허용기준을 0.5ppb(ppb는 10억분의 1)로 정하자는 미국과 1/10인 0.05ppb로 정하자는 EU의 안이 일보의 양보 없이 충돌했다.
유제품수입 미국 ‘느슨’, EU ‘엄격’
우유 등 유제품을 많이 수출해야 하는 미국은 느슨한 기준을, 이들을 수입하는 EU는 엄격한 기준을 원했다. 10년 가까이 끈 아플라톡신 M1 허용기준 논쟁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끝났다. 2002년 우리 식품의약품안전청은 0.5ppb를 아플라톡신 M1의 허용기준으로 결정했다.
소ㆍ돼지 등 가축의 빠른 성장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성장호르몬에 대한 입장도 미국과 궤를 같이 한다. 미국과 EU는 이 문제로도 수년간 다퉜다.
미국은 소에 성장호르몬을 주입하는 것이 소나 해당 식육을 섭취하는 사람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가축에 투여를 허가했다. 반면 EUㆍ캐나다는 소 성장호르몬을 소에 투여하면 산유량이 늘어나면서 소에 관절염 등 부작용 발생을 우려해 동물 보호 차원에서 사용을 불허한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성장호르몬이 1950년대부터 줄곧 사용돼 온데다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며 “EU처럼 수입규제를 하기는 어렵다” 는 입장이다. 성장호르몬은 국내 소에도 물론 투여하고 있다.
미국- EU 유전자변형식품(GMO)안전성 평가 달라
유전자변형식품(GMO)의 경우 미국과 EU가 안전성에 대한 평가와 표시방법을 달리 한다.
2003년 WTO(세계무역기구) 분쟁조정 절차에 들어간 미국과 EU의 GMO 분쟁은 유명하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인체에 해가 없는 GMO 식품을 EU가 1999년부터 수입을 막은 조치는 명백한 WTO 규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EU 측은 “ GMO 식품의 유해 가능성을 경고하는 연구결과들이 계속 나오고 있으며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시 수입을 막는 것은 정당한 조치”라고 맞섰다. 분쟁은 2006년 미국의 판정승으로 끝났다. EU의 GMO 금수 조치를 정당화할 만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금도 EU 국가들은 여전히 정서적 반대 입장을 고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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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환경운동연합이 지난 3월 9일 서울 종로구 환경센터에서 현재 유통되는 햄 제품 일부에서 유전자조작(GMO) 성분이 검출됐다며 표시제 강화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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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산토 등 주된 GMO 개발회사들이 미국 국적이고 미국 내에서 생산되는 콩ㆍ옥수수ㆍ면화 등이 대부분 GMO 작물이어서인지 미국 정부기관에서 발표되는 관련 자료는 대부분 GMO에 호의적이다. 미국에선 GMO를 바이오테크 식품이라 부르며 따로 표시도 하지 않는다. 일반 식품과 구분을 두지 않는 것이다.
EU, GMO 0.9%만 섞여 있어도 표시의무화
반면 EU는 GMO가 0.9%만 섞여 있어도 표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사실상 GMO 식품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GMO가 5% 혼입돼 있으면 표시하도록 한 일본에 비해 훨씬 강력한 표시제다. 우리는 오랫동안 EU와 일본의 중간인 3%를 표시 한계로 정하고 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식품문제에 관한한 양대 진영이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식품 수입국이면서도 같은 수입국보다 수출국 주장에 더 동조하고 수출국의 연구 자료에 의존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식품안전에 관한한 미국 정부는 자국 업체의 이익을 대변하고 우선한다. 아플라톡신 M1의 미국내 조사자료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단적인 예다. 최근엔 식품안전 관련에 대해 미국 뿐 아니라 중국의 압력도 커지고 있다.
FDA. FSIS 자료 금과옥조(金科玉條) 아니다
우리 식품안전당국이 이들 양대 강국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말고 식품안전 이슈에서 수입국의 권리를 잘 챙기길 기대한다. FDA나 USDA의 FSIS(미국 농무부 식품안전국) 자료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길 시기는 이미 지났다.
두 기관은 미국 내에서도 사안에 따라 많은 비판을 받고 있으며 한국인의 신뢰도가 오히려 더 높을 정도다.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tk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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