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뒹구는 추억, 버려진 문화재, 간이역
제223회 이달의 기자상 전문보도 사진부문 / 한국일보 박서강 기자
한국일보 박서강 기자
webmaster@journalist.or.kr
2009.06.10 15:23:07
|
 |
|
|
|
▲ 한국일보 박서강 기자 |
|
|
사진 자체가 ‘피처’적인 면에서 별로 신통치 못한 데다가 사회적 반향도 크지 않았기 때문에 ‘이달의 기자상’ 수상 소식은 뜻밖이었다. 여러가지로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수상작으로 선정해 준 심사위원들께 감사의 인사를 먼저 전하고 싶다.
애초에 봄을 맞아 서정성이 물씬 풍기는 포토에세이를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적당한 소재를 찾다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시골의 조그만 간이역. 시간이 멈춘 듯 고즈넉한 역사(驛舍)의 풍경을 담아 메마른 현대인의 감성을 적셔주고 싶었다.
기억을 더듬던 중 몇 해 전 한국일보 1면에 실렸던 간이역 사진이 생각났다. 삼척의 도경리역과 태릉의 화랑대역 풍경이었는데 간이역 12곳이 문화재로 등록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간이역들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인터넷을 뒤졌다. 인터넷에는 전국의 간이역을 찍은 사진이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그 중 폐허가 된 몇 곳이 특히 눈에 띄었다. 사진 속의 간이역 풍경은 충격적이었다. 건물이 부서지거나 폐쇄된 것은 기본이고 각종 쓰레기와 낙서로 어지럽혀져 있어 문화재라고는 결코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점을 발견한 이상 낭만적인 포토에세이는 접기로 했다. 대신 허술한 관리실태를 고발하기로 하고 가족여행을 떠났다. 뜬금없이 웬 가족여행이냐고?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바람도 쐴 겸, 내 눈으로 현장도 직접 확인할 겸 일석이조를 노린 것이었다. 주말 아침 가은역을 찾아 경북 문경으로 향했다. 다행히(?) 관리실태가 엉망이어서 취재에 대한 확신은 섰지만 아내와 딸 아이에게는 많이 미안했다. 밝고 아름다운 곳만 찾아 다녀도 시원찮을 판에 쓰레기가 가득 찬 폐가에서 여행의 대부분을 허비했으니….
며칠 후 강원 삼척부터 경북 문경, 대구, 전남 순천과 전북 익산에 이르는 본격적인 출장 길에 올랐다. 문제가 된 간이역들은 하나같이 외진 곳에서 쓸쓸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관광자원화하겠다던 애초의 취지도 온데간데 없었다. 코레일이나 지자체는 물론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 역시 사태파악조차 못하고 있었다.
보도가 나간 후 문화재청은 직원들을 현장에 파견해 문제점을 개선했다고 밝혔다. 다만 개발계획에 묶여 있거나 안전상 문제가 있어 당장 개선이 어려운 경우는 상세한 안내문을 게시해 관람객들의 이해를 구하겠다고 말했다. 그 후 두 달이 지났다. 개선 현장을 직접 확인하지 못해 궁금하던 차에 수상 소식이 전해졌다. 내친 김에 이번 주말에는 깔끔하게 탈바꿈했을 간이역을 찾아 진짜 낭만적인 가족여행을 떠나 볼까 한다.
한국일보 박서강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Copyright @2004 한국기자협회.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