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18) 빈자리를 기억하는 법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일면식 없는 이들의 죽음을 기록하며 생긴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때로는 그 현장을 직접 마주하기도 하지만, 뒤늦게 도착한 그곳에서 떠난 이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었다. 슬픔이 가시기도 전 누군가는 그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사라진 이들을 기리고자 다시 찾은 그곳에는 이름도,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빈자리는…
[뷰파인더 너머] (217) 빗속에서 마주한 배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국립중앙박물관을 나서던 순간, 갑작스러운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누군가는 준비해 둔 우산을 펼쳤고 허둥지둥 발걸음을 재촉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빗속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동선과 표정으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냈습니다.저 멀리 낯선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세 살 남짓한 아이가 엄마에게 우산을 씌워주겠다며 작은
[뷰파인더 너머] (216) 공간이 인간에 미치는 영향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여행을 가면 관광지보다 주민들이 사는 동네를 둘러보는 편이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얼굴 표정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활하는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일본 어느 도시의 공원에 들어서자 공원의 중심에 자리 잡은 큼지막한 물체가 눈에 띄었다. 전형적이지 않은 생김새 때문에 공원을 상징하는 조형물인가 했는데, 가까이 가서…
[뷰파인더 너머] (215) 눈은 어디에나 있었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이곳은 기록의 한 장면이다. 뉴스 속 반복되는 장면이 되기 전의 찰나. 나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셔터 소리와 낮게 깔린 웅성거림이 공기를 흔들었다. 그리고 건너편 건물 유리창 너머, 수많은 눈이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전현직 대통령의 배우자가 피의자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선 건 헌정사상 처음이었다. 김건희 여사는 자신을
[뷰파인더 너머] (214) 태극 바람개비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춘천시가 광복 8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청광장에 설치한 태극기 모양이 담긴 바람개비. 이 바람개비를 보고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흥얼거려지는 노래.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킨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광복절이 다가오면 부르던 노
[뷰파인더 너머] (213) 여름의 빛과 그림자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작열하는 여름의 폭염은 모든 곳을 덮치지만, 피할 수 있는 그림자는 모든 이에게 같지 않다. 도심의 분수대는 쉼 없이 물을 뿜어내고,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잠시나마 휴식을 누린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여름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추억은 아니다.대도시의 여름은 풍요롭다. 동네 공원의 분수와 물놀이장
[뷰파인더 너머] (212) 전화기 너머의 표정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가까운 이들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 휴대전화 너머 들려오는 목소리에는 주로 시시콜콜한 이야기보다 깊은 고민과 어려움이 담겨있다. 그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기에 온전히 그 이야기에 집중한다. 오늘 하루 그가 느꼈을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하며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마음속에서 정리한다. 통화 말
[뷰파인더 너머] (211) 여정의 끝에서, 다시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회사, 집. 다시 회사, 다시 집. 같은 동선을 반복하며 대학원 논문이라는 낯선 여정을 병행했습니다. 순간을 좇는 일은 익숙했지만, 지식을 되짚고 한 글자씩 구조화하는 작업은 또 다른 이름의 고독이었습니다. 할 수 있을까? 자신 없는 질문을 품은 채 스스로와 씨름했습니다. 흔들릴 때마다 자전거로 국토를 종주했던 기억을 떠올
[뷰파인더 너머] (210) 인생론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어쩌면 사소한 게 소중한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 당장 긴급하지는 않지만 중요한 일들이 그렇다. 나의 생활 속 소소한 일에 감각을 집중하면 어느새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밖에서 정신없이 일을 하다가도 길가에 핀 꽃을 들여다보고 감동한다. 허리를 펴 하늘을 한번 본다. 매일 타는 버스 기사님께 오늘도 무사히 집
[뷰파인더 너머] (209) 자전거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자전거는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곳곳의 거치대는 자전거로 빼곡하지만, 그중 상당수는 먼지를 뒤집어쓴 채 멈춰 있다. 타지도 않고, 정리되지도 않은 채 방치된 자전거들. 사람들은 왜 자전거를 쉽게 버리지 못할까.자전거엔 시절이 담겨 있다. 처음 페달을 밟던 날의 긴장과 떨림,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섰던 용기와 극복
[뷰파인더 너머] (208) 선생님 사랑해요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전교생이 100명이 안 되는 원도심 초등학교 운동장을 걷던 내 눈에 6학년 선생님 사랑해요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가던 걸음을 멈추고 카메라에 담았다. 잠시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지금 우리가 느끼고 있는 교육 현장의 모습을 생각했다.선생님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옛말이 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예
[뷰파인더 너머] (207) 6·25가 앗아간 신혼사진, 75년 만에 찍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7일, 대구 팔공산 자생식물원. 연보라색 꽃들이 만개한 숲속 정원에서 흰 웨딩드레스와 검은 턱시도로 단장한 노부부가 나란히 앉았다. 신부는 하얀 부케를 들었고, 신랑은 단정한 나비넥타이에 흰 장미를 달았다. 마주 보며 웃는 두 얼굴 사이로, 긴 세월을 건너온 사연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해.
[뷰파인더 너머] (206) 가시밭길을 지나며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힘든 일이 찾아올 때마다 가시밭길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곤 한다. 10대 후반, 기자가 되고 싶어 조언을 구하기 위해 찾아간 한 선배는 가시밭길이라며 나를 만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선배의 한마디가 와닿았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몸과 마음은 쉽게 금이 가고 망가지기 일쑤였다.반복되는 침식에 체념했을 무렵 영화 브루탈리스트를…
[뷰파인더 너머] (205) 보정은 기술이지만, 절제는 태도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대선 후보들의 벽보 사진이다. 사진은 선명하지만, 후보들이 내세운 고유의 색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일부는 색이 검게 타 얼굴조차 식별이 어려울 정도다. 후보정의 결과다.한 보도사진 심사위원은 사진에 적용된 보정 방식에 대해 문제없다며 대비의 적극 활용을 권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단순한 대비 조정을 넘어, 샤프니스(선명도
[뷰파인더 너머] (204) 낯선 눈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날씨 스케치를 좋아한다. 집요하게, 조금은 애타는 마음으로(?) 길을 지나는 사람을 바라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또 재밌는 것은 계절마다 겹치는 취재라 똑같은 걸 찍는 것 같지만 마냥 그렇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얼마 전 비 스케치를 하기 위해 거리의 풍경을 눈으로 훑고 있었다. 그날은 희한할 정도로 비가 그쳤다 내리기를 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