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과 아메리칸 스나이퍼
영화 ‘국제시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제 잦아든 상태다. 대충 정리된 논쟁의 결과는 ‘이념으로 영화를 바라볼 필요는 없다’ 정도인 것 같다. 동의한다. 하지만 영화 국제시장은 애초부터 이념이 논란의 중심인 영화는 아니었다. 언뜻 정치성향이 다른 세대 간 대결로 비춰졌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중 하나였을 뿐, 영화의 내용 자체에 대한 논쟁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국제시장의 내용을 두고 벌이는 논쟁이라면 ‘역사를 적절하게 다루고 있는가’로 보는 것이 옳다. 영화의 설정 자체가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나열하는…
현실은 명명을 통해 구축된다
현실은 명명을 통해 인식되는 것이다. 우리는 객관적 실체를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우리가 경험하는 실체는 명명되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표현하는 어휘가 몇 단어 안 되지만 에스키모인들은 수백 가지의 표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동일한 눈을 보면서 우리와 에스키모인들은 다른 실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그래서 대중들이 서로 다른 경험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수없이 많은 의미화 투쟁이 이루어진다. 학생 인권 침해의 대표적인 사례인 체벌은 ‘사랑의 매’라는 이
정당해산 결정을 바라보는 시각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과 소속 국회의원의 자격상실 결정은 한마디로 이 사회의 법치주의의 수준을 보여준 사건이다. 347쪽에 달하는 결정문은 방대하긴 하지만 해산의 근거에 대한 논리와 사실근거는 빈약하다. 고심의 흔적은 묻어나지만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자주파 중심의 정당’이므로 위헌정당이라는 결론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위 결론이 합리적이지도 않지만 위 결론을 이끌어내는 근거도 빈약하다. 일부 소속 정당원의 활동을 곧바로 정당의 활동으로 대체하는 논리적 비약은 처음부터 결론을 정해놓지 않고서는 이뤄지기 힘들다고 본다.더
언론은 과연 사슴을 사슴이라 불렀나
대학교수들은 12월에 ‘올해의 사자성어’를 뽑는데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선정됐다. 착잡했다. 지록위마는 사슴을 가리켜 사슴이라 부르지 않거나, 또는 사슴이라 부르지 못하는 상황인데 올해 한국 정치가 그러했던 것 같다. 대표적으로 4월 세월호 참사나 11월 ‘비선 실세 국정논란’ 의혹 문건에서 밝혀져야 할 수많은 진실이 ‘법치주의’라는 명분으로 또는 ‘대통령의 발언’에 눌려 가려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12월 둘째 주부터 3주 연속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했다. 진나라 시황제를 모신 환관 조고는 진시황이 죽자…
소셜네트워크 세상과 ‘땅콩 회항’
요즘 미디어를 장식하고 있는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은 우리에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사건이다. 이번 일의 전개 과정은 지금이 소셜네트워크 세상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줬다.‘땅콩 회항’이 가져온 파장은 컸다. 신문과 방송은 물론이고, 특히 인터넷상에서 더 컸다. 왜 대한항공과 조현아 전 부사장은 이런 ‘악몽’ 같은 일을 겪게 된 걸까. 원인을 생각해봤다. 미디어라는 측면으로 국한해서 보았을 때 무엇보다 대한항공이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 세상이 도래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
‘비선 실세’ 의혹, 언론의 野性에 불을 당기다
정윤회 문건으로 시작된 이른바 비선정국 파동을 지켜보며 달리 주목하는 건 언론, 특히 주류 보수언론들이 내보이는 공격성이다. 보수 성향의 주류 언론들은 통상 정치권력의 중심부에서 내놓는 시그널에 주파수를 맞추며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고 여론을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왔다. 그것이 수구라는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고 현실과 미래를 담보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건 ‘통상’이지 ‘항상’은 아니다. 보수 언론이라 해서 언제나 보수집권 세력의 바람과 각본대로 움직이는 것만은 아니다. 집권 세력과 상호교감을 유지하며 뻔한 보도와 의도된 논
'난방전사 김부선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관련 정정보도문
본보 지난해 9월30일자 '난방전사' 김부선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라는 제목의 기고 중 "김부선씨 폭로 '0원 난방비 비리' 의혹과 관련, '이 비리의 책임을 지고 H아파트의 관리소장은 사퇴'"라는 내용을 포함하였습니다. 그러나 해당 관리소장은 이 비리의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것이 아니라서 바로잡습니다. 이 내용은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난방전사’ 김부선씨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연예인이 억울한 사람을 위해 싸워야 한다.” 영화배우 김부선씨가 지난 9월26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서울동부지방검찰청 본관 앞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는 보도를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했다. 연예인이 공인이라며 엄벌하는 한국의 현실도 한심하다고 생각하는데, 연예인이 정의의 사도가 되어야 한다니! 경찰, 검찰, 언론, 정치인, 국회의원, 정부는 다 어디서 무엇을 하기에, 생계를 위해 연기 대본 외우기에도 바쁜 연예인을 나가 싸우도록 누가 등 떠밀고 방조했단 말인가. 김부선씨가 자신이 거주하는 서울 옥수동 H아파트 난방비 비리를 문제제
‘정윤회 의혹’을 ‘문건 유출’로 프레임 전환하는 보수언론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불거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번에 문건을 외부로 유출한 것도 어떤 의도인지 모르지만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이며 “이런 공직기강의 문란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할 적폐 중 하나”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그동안 언론에서 이 사건을 두고 주로 사용한 표현인 ‘정윤회 국정개입’이나 ‘비선실세 개입’ 대신 ‘문건 외부 유출’과 ‘공직기강 문란’이란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사실 ‘문건 유출’이란 표현은 이미 조선일보가 지난달 29일자 1면
광고, 신뢰 그리고 사회적 지원
‘기사형 광고’라는 표현이 있다. 기사형식을 차용한 광고다. 하지만 기사는 진실을 알리는 공익을 추구하고 광고는 과장을 통해서라도 상품 판매를 극대화시키는 사익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이 둘을 합친 ‘기사형 광고’라는 표현은 형용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광고보다 효과가 좋다는 이유로 이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고 형태로 자리 잡았다.반면 우리 법은 기사와 광고, 프로그램과 광고를 구별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용자인 소비자가 기사와 광고를 혼동함으로써 받게 될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다. 수용자는 기사를
법원 판결은 사회적 정의와 일치하는가
법원의 판결은 과연 사회적 정의와 합치하는가. 지난주 선고된 쌍용자동차 해고가 유효하다는 대법원 판결 이후 사람들이 한 번쯤 떠올려봤을 만한 물음이다. 이 질문은 대법원은 우리나라 사법제도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집단이며, 그들의 최종 판단은 정당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출발한다. 대의민주주의에 따라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법을 만들었다는 신뢰도 있다. 설사 법이 힘 있는 자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더라도 3권분립의 원칙에 따라 독립적인 사법부가 판단할 것이라는 최후의 신념이 더해진다. 그래서 법원의 판결은 최종적이고, 그 합리성은 의심하기 어
다섯 살 무상급식과 한 살 무상보육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9일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무상급식은 (대통령) 공약이 아니라 지자체 재량으로 하는 것”이라며 “누리과정(무상보육)은 무상급식과 달리 (중략) 공약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고 한 경향신문 10일자 1면 사이드톱 기사를 읽다가 혀를 찼다. 정치·사회적 갈등을 원만하게 조정해야 할 청와대 수석‘께서’ 야당이나 무상급식 지지자의 가슴에 맞불을 놓은 저리 세련되지 못한 발언을 하다니 싶었던 탓이다. 또한 안 경제수석의 발언은 무상보육 정책을 고수하라는 일종의 공개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인데, 무상급식을 지지
언론, 핀테크(Fin Tech)에 주목하라
요즘 들어 테크놀로지가 가져오는 ‘변화’의 파고가 점점 더 높아지는 걸 느낀다. 그로 인해 무너지는 ‘장벽’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핀테크(Fin Tech)’도 그 한 사례다. 얼마 전 금융위원회 신제윤 위원장이 판교의 다음카카오 본사를 방문해 카카오페이 시연을 보며 직원들과 간담회를 갖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보수적인 금융당국의 수장이 금융기관이 아닌, 생긴 지 몇 년 안 된 인터넷 기업을 찾아가 그 기업이 만든 모바일 결제 서비스의 시연을 지켜본 것이다. 사실 대표적인 규제산업인 금융분야의 서비스를 ‘일반 회사’가 주도적
지상파의 배은망덕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이 과거의 화려한 권좌에서 물러나고 있음은 모두가 지켜보는 바이다. 과거 지상파 텔레비전은 당대의 미디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콘텐츠, 가장 선진적인 기술의 보유, 전파의 독과점에 의해 번성하고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미디어의 환경이 바뀌고 지상파 텔레비전의 가치는 구조적으로 추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최근 그 추락을 잠시나마 지연시켜준 사건이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사고 당일 지상파 방송 3사 메인뉴스 시청률은 6%포인트 이상 껑충 뛰었다. KBS ‘뉴스 9’은 16.5%, MBC ‘뉴스데
안전 대신 유병언을 선택한 유병‘언론’들
연일 사고다. 왜일까? 현 정권 들어서서 벌어지는 수많은 사고들을 지켜보면서 아마 누구라도 도대체 왜 이렇게 사고가 발생하는지 한번쯤 자문해봤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모든 사고를 꿰뚫어 내는 명료한 이유를 찾을 순 없다. 다만 한 가지, 이런 사고가 날 때마다 언론이 떠들어대는 ‘국민들의 안전 불감증’ 때문만은 결코 아니라는 확신은 있다. 사고가 반복된다는 건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한 가지는 사고가 나기 전에 충분히 준비를 못 했다는 것. 당연한 말이다. 준비를 잘 했으면 사고가 날 리가 없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