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통계, 우리는 책임 없나
데이터저널리스트는 출입처가 따로 없다. 대신 통계와 데이터가 중요한 취재원이다. 이를 통해 공직을 감시하고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숫자 하나를 뽑기 위해 길게는 한 달씩 데이터와 통계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만큼 객관적인 사회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오래 공들이는 중요한 취재원인 것이다.그런데 최근에 그 통계가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 정부에서 만든 통계가 왜곡됐다고 포문을 열었고 여야는 계속해서 힘겨루기 중이다. 국가의 근본이라고 불리는 통계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통계 왜곡은 최근에만
노조에 칼날부터 겨누는 노동 개혁
윤석열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노동 개혁의 출발점으로 노사 법치주의를 꼽았다. 정작 노동 분야 연구자들에게는 생소한 단어라고 한다. 사실 노사 법치주의라는 말은 어색하다. 노사관계에서는 자치(스스로 통치함)라는 말을 더 많이 쓰며 그 핵심은 대화와 협상이다. 대통령이 준법과 법치주의를 헷갈리는 것 같다(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일단 노사가 법을 지켜야 노동 개혁도 할 수 있다는 말일까?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30인 미만 기업이 주 52시간 상한제를 지키지 않은 걸 발견해도 올해까지는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 기업이 주 52시
연애 않는 이들에게 출산 권하는 정부
2023년 토끼해가 밝았다. 새해 첫 칼럼인 만큼 토끼 같은 자식 이야기를 해보겠다. 윤석열 대통령이 모든 분야의 정책을 총동원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주력하는 인구, 즉 저출생 이야기다. (현상의 책임을 여성에 지우는 저출산 대신 저출생이라는 표현을, 합계출산율 같은 학문 용어는 그대로 쓰겠다.)합계출산율 0.7명대 전망에 정부의 움직임은 절박하다. 나경원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전국을 누비며 산파 역을 자처하고,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은 부처 폐지 후 보건복지부 내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 편입에 전력을 다한다. 육아휴직 기간과
질문을 계속하려면
유튜브 보니까 날씨가 엄청 춥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광화문 거리에서 시민에게 내일 날씨를 확인하셨냐고 물었더니 유튜브에서 봤다는 말이 돌아왔다. 회사를 마치고 거리에 나온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남성은 아마도 어떤 언론사가 올린 날씨 관련 영상을 봤겠지만, 그에게 언론사가 생산하는 뉴스와 유튜브는 구분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언론사는 꾸준히 차별화하려고 하지만 20년 전에는 인터넷 포털에, 이제는 유튜브 안에 가두리 양식을 당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1만여개까지 늘어난 언론사가 조사까지 똑
'히스테리시스', 돌이킬 수 없는 기후 위기
맥주캔이나 콜라캔 같은 깡통에 강한 힘을 주면 찌그러진다. 발로 세게 밟으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납작해진다. 깡통이 견딜 수 있는 힘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어떤 형체에 일정 수준 이상의 힘이 가해졌을 때 되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변형이 일어나는 현상, 바로 히스테리시스(hysteresis)다. 우리말로는 이력 현상이라고 한다.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않는 비가역성(irreversibility)과 같은 의미로 모두 물리학에서 많이 쓰는 용어다. 그런데 최근 기후위기를 연구하는 분야에서도 히스테리시스에
내 마음 속 '욘더파우치'
사진 또는 동영상 촬영 시 삭제 및 퇴장조치 합니다.지난달 8일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 밴드 화이트 스트라입스 리더 출신 잭 화이트의 내한공연 시작 전 흘러나온 안내방송은 경고에 가까웠다. 아이유,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빌리 아일리시, 마룬5 등 숱한 슈퍼스타들의 콘서트를 갔지만 이런 경고는 처음이었다. 앞줄 관객 스마트폰을 가져가 셀카를 찍어주거나, 동영상을 찍는 관객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노래를 부르는 등 파격 팬 서비스를 선보이는 가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휴대폰을 꺼내든 이들을 내쫓겠다는 경고라니. 공연 전부터 의
핵무기 갖자는 결기… 한국은 북한이 될 수 없다
한국도 핵무기 보유국이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이용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시사한 핵무력 정책을 법제화하고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발사 성공에 대한 대응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북핵대응특위를 구성하고 지난 26일 첫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특위 위원장인 3성 장군 출신의 한기호 의원은 현재까지 추진한 비핵화 정책은 모든 게 다 실패했고, 이제는 비핵화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며 핵 공유, 핵 재배치, 핵 개발 자체도 특위 내부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일각에서는 박정희 정권 때처럼 비
카타르 월드컵은 눈치 보지 말자
4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세계 최고 축구 축제인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이 지난 20일 카타르 도하 땅에서 막을 올렸다. 2022 카타르 월드컵은 1930년 우루과이 초대 대회 이후 22번째이자 중동 국가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이다. 열사의 땅 중동 한복판에서 열리는 대회답게 사상 첫 겨울월드컵(11~12월)으로 치러진다.한국 축구는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10회 연속(통산 11회)으로 월드컵 본선에 올랐다. 월드컵 단골손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는 여전히 월드컵 무대에서 언더독이다. 그러다…
플라스틱 줄이기 후퇴하는 환경부
고래야, 미안해. 바다거북에게 미안타.필자가 2019년 8월 바다거북, 2020년 1월 참고래 부검 연구 현장을 취재한 뒤 썼던 르포 기사에 달린 댓글 중 일부다. 바다거북과 참고래 사체에 대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진행된 과학적 부검 연구에서는 이들의 체내에 다량의 플라스틱이 들어있음이 확인됐다. 먹이를 구하지 못해 마른 북극곰이 기후위기의 상징이 되어 경각심을 안겨준 것처럼 거북과 고래 부검은 시민들의 플라스틱 오염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데 일조했다. 이 동물들에 대한 사람이 미안해라는 반응들은 이제 시민들의 작은 실천으로 이어지
가짜뉴스에 흔들리는 한국 경제
2021년 5월과 6월. 한국은행은 기자간담회와 창립기념사를 통해 기준금리 인상 의지를 밝혔다. 지난해 6월11일 창립기념사에 담긴 통화정책을 적절한 시점부터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갈 것이라는 문구 등이 대표적이다. 한은 임직원들도 비슷한 시점 여러 채널을 통해 시장에 연내 금리인상 의지를 전달했다.하지만 여의도 증권가는 한은의 메시지를 무시했다. 증권사 대부분은 작년 5~6월에 한은이 연내 금리인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서를 쏟아냈다. 2024년 1분기에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보고서까지 나왔다. 증권가의 보고서가 기관투자가와…
구조를 말하지 않는 사회
지난달 29일, 참사가 일어나기 불과 세 시간 전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인근 도로를 차를 몰고 지나갔다. 꽤 싸늘한 늦가을 날씨에도 배를 시원하게 드러낸 상의를 입고 한껏 멋을 낸 거리의 젊은이들을 보며 생각했다. 배앓이는 안 하려나 몰라. 역시 젊음이 좋구나. 해사한 미소들에 얕은 질투를 느끼기도 했다. 10년만 어렸어도 오늘 같은 날 이태원에 갔다!조금만 더 어렸다면, 나는 정말로 그 군중 속에 있었을 것이다. 코로나19로 3년 가까이 착용했던 속박 같은 마스크를 허공에 집어던지고, 가진 것 없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두려울 것도…
연차 쌓이면 올라가는 '연공임금'의 성벽
직무, 곧 하는 일에 따라 임금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꽤나 미심쩍은 혹은 적대적인 반응을 맞닥뜨린다. 직무 가치를 누가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느냐, 자본가나 관리자 마음대로 하려는 거냐, 개개인의 경쟁이 심화된다 등.기업들이나 정부가 의도적으로 뒤섞지만, 직무급과 성과급은 다르다. 개인이나 집단의 성과를 평가해 기본급을 정한다면 성과급이다. 반면 해당 직무에 필요한 숙련에 따라 기본급을 정하는 게 직무급이다. 이때 직무에 요구되는 숙련을 사측이 일방적으로 정하진 않는다. 독일 등 유럽에서는 개별 기업을 넘어선 산업별 노동조합과 산업
의지가 앞서야 할 반지하 대책
의지가 앞섰다.국정감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은 반지하 전수조사 방침을 후퇴시켜 번복해 발표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 8월 기록적인 폭우로 반지하 주택에서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뒤 일주일 만에 내놓은 대책에서 서울시는 20만호에 달하는 서울 내 반지하 가구를 전수조사해 임대주택으로 이주할 수 있도록 주거 상향 로드맵을 내놓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5일 서울시는 1102가구+ 수준의 표본조사로 계획을 변경했다. 오 시장은 전수조사는 인력이나 예산상 한계가 있고, 통계청도 표본조사를 하지 않냐고 덧붙였
'트리플 딥' 라니냐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
또 라니냐다. 2020년 9월 시작된 라니냐가 이번 가을과 겨울까지 3년째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라니냐는 남미 페루 부근 적도 동태평양의 수온이 평소보다 낮아지는 현상이다. 수온 그래프가 3번이나 아래로 곤두박질치며 트리플 딥 곡선을 그리게 됐는데 매우 이례적이다. 보통 라니냐는 1~2년 정도면 사라지고 중립을 되찾기 때문이다. 세계기상기구(WMO)는 3년 연속 라니냐는 이번 세기 들어 처음이라고 밝혔다.라니냐에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는 이유는 뭘까. 라니냐는 적도 부근 바다의 수온만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의 대기 순환
이유 있는 잔혹함
(이 기사에는 영화 늑대사냥에 대한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문제적 영화가 등장했다. 21일 개봉한 늑대사냥이다. 영화는 시사회 후 역대 한국 영화 중 가장 잔인하다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개봉 직후 이 정도면 고어물(신체손괴, 살상 등을 소재로 한 영화 장르) 아니냐는 비판의 한가운데 섰다. 사지가 절단되고 몸을 관통한 흉기가 장기를 끄집어내는 장면은 애교다. 아기를 칼로 찔러 죽이려는 장면이나, 시체에 소변을 보는 장면은 역겨움까지 불러일으킨다. 피칠갑의 생지옥을 구현하고자 영화에 쓰인 가짜피만 2.5톤에 달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