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드라마가 계속 만들어지려면

[언론 다시보기]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넷플릭스는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성공을 이끈 가장 중요한 플랫폼이었으며, 동시에 여러 창작자에게 기회의 장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기회의 문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이제 글로벌 플랫폼의 투자와 이를 통한 성공에 기댈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지원과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넷플릭스 제공

미디어 업계 안팎의 사람들이 만나 대화를 나눌 때 서로 가장 답답해하는 순간은 업황을 이야기할 때다. 바깥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세계 시장에서 여전히 승승장구하는 줄 알지만, 안에서는 현장이 곪아 가는 속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쉽게 이해받지 못한다. 화려한 일부 글로벌 성과가 내부의 여러 문제와 어려움을 가리는 탓이다. 어려움만 이야기하면 자칫 볼멘소리로 들리기 쉽고, 반대로 잘 나가는 성과를 말하면 그러면 지원이 필요 없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돌아온다. 안팎의 시선이 그렇게 평행선을 달리는 사이 변화에 대응할 골든타임은 번번이 흘러가 버린다.


실제로 현장의 시계는 바깥에서 보이는 풍경과 사뭇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촬영을 모두 마치고도 1년 넘게 공개할 곳을 찾지 못한 드라마가 있고, 수년간 방영이 미뤄진 작품이나 제작비가 끊겨 촬영이 멈춘 현장도 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집계로 국내에서 공개된 드라마는 2022년 141편에서 2024년 100편 남짓으로, 2년 사이 30% 가까이 줄었다. 지금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작품에는 몇 해에 걸친 기획과 개발, 다양한 제작 현장에서 쌓아 온 경험이 담겨 있다. 과거에 축적한 힘으로 오늘의 성과를 내고는 있지만, 정작 새로운 작품을 기획하고 다음 세대의 창작자를 길러내던 제작 기반은 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이 문제는 드라마 산업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동안 드라마는 국내 방송사와 플랫폼이 시청자를 모으고 광고와 유통 수익을 만들어 온 주요 동력이었다. 방송사가 드라마를 통해 확보한 재원과 채널 경쟁력은 보도와 교양, 예능을 비롯한 미디어 생태계 전반을 지탱하는 기반이기도 했다. 글로벌 플랫폼 중심으로 시장이 재편되면서 이 연결 고리가 빠르게 약해지고 있다. 드라마 편수가 줄어드는 현상은 한 장르의 위축을 넘어, 글로벌 자본과 긴밀히 연결된 시장 환경 속에서 한국 미디어가 제작 경험을 축적하고 그 성과를 다음 작품에 투자할 구조를 어떻게 다시 세울 것인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넷플릭스가 한국 서비스 10주년을 기념해 24일 개최한 행사에서 ‘오징어게임’ 주역인 이정재, 이병헌, 박해수(왼쪽) 배우가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이 질문은 한국만의 것이 아니다. 각국은 글로벌 제작 투자를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이를 자국 산업의 성장으로 연결하기 위해 지원 경쟁에 나서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촬영이 다른 주와 해외로 빠져나가자 2025년 영화·TV 세액공제의 연간 지원 규모를 3억3000만 달러에서 7억5000만 달러로 늘렸다. 일본도 ‘IP360’을 통해 새로운 지식재산(IP) 개발부터 대규모 작품 제작과 해외 유통까지 지원하고, 해외 작품의 자국 내 촬영을 유치해 제작 인력의 기술과 경험을 높이려 한다. 세제 혜택과 제작 지원을 투자 유치, 인력 양성, 해외 진출로 연결하는 전략이다. 세계적인 흥행작을 만드는 경쟁과 함께, 그 작품이 만들어질 현장과 다음 투자를 확보하려는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우리에게도 창의적 역량의 재생산 구조를 다시 잇고 다음 도약을 준비할 마중물이 필요하다. 대작 위주로 재편된 시장에서 제작 기회가 좁아진 중간 규모 드라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중간 규모 드라마는 신인 작가와 연출자가 경력을 시작하고, 스태프가 작품과 작품을 이어 가며 숙련을 쌓아 온 통로였다. 제작사에도 다양한 소재와 형식을 시도하며 후속 작품을 기획할 경험을 제공했다. 중간 규모 드라마의 제작을 뒷받침하는 지원은 이러한 성장의 통로를 다시 넓히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새로운 창작자와 기획이 시장에 진입하고, 작품을 거듭하며 세계 시장에 도전할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다. 한국에서 계속 작품을 만들고 다음 작품에 투자할 기반이 두터워져야 글로벌 제작 투자를 유치하고 활용할 힘도 커질 수 있다.

이성민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그런 만큼 드라마 산업에 대한 지원은 제작과 유통, 후속 투자로 이어지는 흐름을 강화하는 긴 호흡으로 설계해야 한다. 제작 현장에서 새로운 기획과 인력이 성장하고, 그 작품이 방송사와 플랫폼을 통해 시청자와 만나며, 성과가 다시 다음 작품에 대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드라마가 시청자를 모으고 수익을 창출하는 힘을 회복하는 일은 방송사와 플랫폼의 경쟁력을 높이고, 다양한 콘텐츠에 도전할 여력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한국 드라마가 세계 시장에서 거둔 성과는 우리가 가진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가능성을 지속적인 성장으로 발전시킬 과감한 투자다. 창작자가 새로운 작품에 도전하고 미디어 기업이 다음 기획에 투자할 수 있도록 산업의 토대를 단단히 하는 일, 그것이 지금의 어려움을 넘어 한국 미디어 콘텐츠 산업의 재도약을 준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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