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은 결정보다 집행단계에서 무너진다.’
정책연구 분야에서는 꽤 널리 알려진 말이라는데 법이 제정되고 후속 조치로 정책이 마련되더라도 현장의 문제가 생각만큼 잘 해결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법이 입안되었다고 할지라도 조직과 인력·예산이 뒷받침되지 않는 경우가 의외로 많고, 때로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만큼 충분한 자원과 역량이 제공되지 않아 정책집행 효과가 미미한 사례도 흔하다는 것이다.
지역방송만 해도 그렇다. 지역방송 관련 현안을 단독으로 다룬 지역방송발전지원특별법은 2014년 말에야 만들어졌다. 방송 산업의 위기 속에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는 지역방송의 지속 가능성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이 법에 근거해 정부는 3년 단위로 ‘지역방송발전지원계획’(이하 지원계획)을 수립해 다양한 정책을 전개하고 지역방송은 프로그램 제작과 구성원 재교육, 나아가 경영 비전까지 조율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제5차 지원계획이 시행되는데 최근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정부 발표가 공개됐다. 출범 1주년을 맞이한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미디어 기본사회’를 표방한 제1기 비전 선포식을 열고 4대 목표와 12개 정책과제를 제시한 것이다. 발표는 내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각종 방송미디어 분야의 비전과 시책을 종합한 것이었는데, 이 중 지역방송 지원계획에 대한 큰 그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포함됐다. 현재는 지원계획 세부안을 마련하기 위해 산업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주요 뼈대를 세우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관련해 학계와 산업계에서도 다양한 세미나와 포럼을 통해 다종다기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돌이켜보면 지원계획은 성과가 분명한 만큼 한계도 뚜렷했다. 지역방송 차원에서 시도하기 어려운 대형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해준다거나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디지털 전환과 뉴미디어 대응에 필요한 실험과 조직변화를 이끌도록 지원했다는 측면에서는 분명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가속화하는 제작 기반 약화나 광고시장의 붕괴, 그에 따른 안정적인 재원 부재와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는 데 있어서는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인지 간혹 산업계에서는 지원계획을 반신반의하는 체념과 무기력이 감지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역방송의 지속 가능성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지원계획이 마중물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현장의 체념과 의심은 어찌 보면 생존조건을 바꾸는 구조적인 체질 개선에 좀 더 적극적으로 임해달라는 요구이자 바람일지 모른다. 현장의 주된 요구가 지원계획의 개별사업을 확대하거나 기존 성과에 얽매이기보다 생존조건을 바꾸는 구조적 변환에 보다 과감하게 나서줄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방미통위가 이번에 발표한 ‘미디어 기본사회’ 비전 안에 지역방송 활성화방안에 관한 관심이 누락되지 않고 드러나 있다는 점이다. 통상 방송미디어 산업 전체를 언급하는 정책 제시에 지역방송이 별개의 아이템으로 다뤄지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는 점에서 더욱 기대를 갖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딱 한 가지를 한 번 더 강조하고 싶다. 내년 1월 출범을 목표로 추진 중인 한국방송미디어통신진흥원(가칭 미디어진흥원) 안에 지역방송 업무만을 따로 관장하는 조직과 인력, 예산을 분명하게 명시해 달라는 요구다.
방미통위가 구상하는 미디어 기본사회 구현은 지역방송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미디어 기본사회 정책을 현장에서 구현하게 될 미디어진흥원 조직 내부에도 지역방송 현안을 전담할 조직과 인력, 예산이 별도로 존재해야 한다.
미디어진흥원은 그간 방송광고를 주로 담당했던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와 미디어 교육 및 시청자 주권 업무를 담당했던 시청자미디어재단을 통합해 내년 1월 출범을 목표로 진행 중인 방미통위 산하 정부기관이다. 우여곡절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당분간 염려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되지만 내년 1월 출범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그래서 미디어진흥원 안에 지역방송 전담 조직이 구성되기를 희망한다.
혹여 지역방송 업무는 본사를 대상으로 한 방송 정책의 일부로 처리하면 가능할 거라고 판단했을 수 있다. 그러나 지역방송 정책은 고유의 특수성과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반영할 수 있는 전담 조직을 통해 전개돼야 한다. 본사 중심으로 설계되는 방송 정책을 규모만 축소하거나 ‘N분의 1’로 적용하는 식으로 지금의 지역방송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두 기관 통합을 통해 시너지를 확보하고 미디어 기본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면 더더욱 지역방송 전담 조직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