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귀가하던 여성을 따라가다 피해자의 머리를 돌려차기로 가격한 후 성폭력을 저지르고 살해하려 한 이른바 ‘부산 돌려차기 사건’. 가해자의 폭행 장면이 담긴 CCTV 화면은 사건 후 몇 년 동안 관련 보도에 계속 등장했다. 잔혹한 범행 장면이 수년 뒤까지 반복적으로 노출될 필요가 있을까. 이듬해 서울의 한 등산로에서 여성을 무차별 폭행해 살해한 최윤종은 부산 돌려차기 사건 보도를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범행 수법을 필요 이상으로 상세히 전하는 보도는 2차 피해로 이어질 뿐 아니라 때로는 이처럼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도 있다.
종종 언론은 젠더폭력 사건의 ‘2차 가해자’로 호명된다. 성폭력 등 젠더폭력 사건에서 자극적인 제목, 이미지, 영상은 언론사에 트래픽 수익을 안겨줄 때가 있다. 피해를 상세히 묘사할수록, 제목이 자극적일수록, 클릭하고 싶은 섬네일이 달려 있을수록 조회수가 잘 나온다. 이를 자정하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관련 단체들은 권고기준과 가이드라인 등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도 여성가족부 시절이던 2014년 ‘성폭력 사건 보도 수첩’ 등을 펴냈다. 경향신문처럼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든 개별 언론사도 있다. ‘불법촬영’, ‘교제폭력’ 같은 용어가 보도에 정착한 데는 이런 규범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이런 가이드라인들은 관심 있는 사람이나 들여다보고 지키는 ‘참고자료’에 불과하다는 한계도 명확했다.
최근 마련된 ‘여성폭력 사건보도 권고기준’이 의미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기준은 지난해 개정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개정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은 성평등가족부가 보도로 인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언론의 여성폭력 사건 보도에 대한 권고기준을 수립하고 이행확보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언론은 정부의 협조 요청을 적극 이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여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하는 보도를 개별 언론사의 윤리 문제를 넘어 국가와 언론이 함께 져야 할 공적 책임으로 법에 명시한 것이다.
이 기준은 성폭력 등 젠더폭력 사건을 보도할 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제목·묘사·시각자료 등의 사용을 지양하고, 정확한 용어로 사건의 심각성을 엄정하게 보도해야 한다는 내용 등을 담았다. 여성폭력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바라보며 왜곡된 사회적 통념과 편견을 재생산하지 않을 것, 피해자를 보호하고 부당한 낙인을 찍지 않을 것, 보도로 인한 인권침해가 발생했을 경우 즉각 조치할 것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그동안 이와 비슷한 가이드라인은 많았지만, 법적 근거를 갖춘 사건 보도 기준이 마련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기준은 수직적인 언론사 구조에서 현장 기자들이 문제를 제기할 근거 역할을 할 수 있다. 자극적 보도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단순히 기자 개인의 감수성 문제가 아닌 법적 원칙이자 공적 기준에 기반한 것이 된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남은 과제는 이행이다. 권고기준 마련 당시 의견 수렴을 위한 토론회에서 현장 기자들은 이 기준이 또 다른 가이드라인으로 남지 않으려면 실질적인 이행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평등가족부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수습·경력 기자 대상 교육에 이번 권고기준 내용을 반영하고, 여성폭력 방지 정책 유공 포상 시 우수 보도 기자도 포함할 계획이다. 정부와 언론계가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을 높일 방안들을 더 많이 찾아 나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