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6일 네팔에서 대홍수가 발생했다. 우리 언론도 하루 종일 속보를 내보내며 사망자와 실종자 수, 마을이 순식간에 사라진 피해 규모에 주목했다. 과학자들의 분석을 통해 빙하 붕괴와 지구온난화 등 재난 원인도 비중 있게 다뤘다. 수력발전소 건설 현장에 파견된 한국인 남성 노동자들이 실종되면서 이들을 찾기 위한 한국 정부와 기업의 노력도 비중 있게 보도됐다. 이런 가운데 재난 피해에 따른 성별 실태는 거의 가시화되지 않았다. 즉 사망자와 실종자 수를 보도하면서 성별 피해 현황을 보도한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네팔 경찰 발표와 현지 언론 보도에는 성별 분리 통계(혹은 성인지 통계)가 포함됐다. 네팔의 국영 공영방송사인 라디오 네팔(Radio Nepal)에 따르면 15일 현재 수습된 시신 중 남성 544구, 여성 336구, 그리고 부분 유해가 519구로 나타났다. 또 재난 이후 실종자는 내국인 남성 2907명, 여성 572명, 그리고 외국인은 남성 272명, 여성 328명이었다. 이처럼 현지에서 생산·보도된 성별 피해 현황은 우리 언론을 통해 거의 가시화되지 않았다. 경향신문과 뉴시스 같은 일부 매체가 유엔인구기금(UNFPA)·유니세프 등 국제기구가 발표한 자료 및 인터뷰, 현지 활동가의 SNS를 활용해 현지 여성이 어떤 조건에서 재난에 노출됐으며, 재난 이후 어떠한 피해를 겪고 있는지를 다뤘다.
성별 분리 통계나 여성 피해 현황을 보도하는 것이 반드시 여성의 피해가 더 컸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네팔인 실종자는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반면 외국인 실종자는 여성이 더 많았다. 성별 분리 통계는 이러한 차이가 왜 발생했는지를 질문할 수 있도록 한다.
사실 네팔 언론은 재난으로 인한 성별 피해 현황을 꾸준히 가시화했다. 온라인 뉴스매체 네팔뉴스(Nepal News)는 여성들이 부엌에서 식사를 준비하느라 재난 발생을 알지 못한 채 그대로 실종됐다는 점을 보도했다. 네팔의 대표적인 영자 일간지 카트만두 포스트(Kathmandu Post)는 재난 이후 여성의 일상과 돌봄의 문제를 다뤘다. 특히 임산부와 여성 청소년 등이 처한 상황을 상세히 보도했다. 즉 재난 이후에도 성별에 따라 피해가 어떻게 다르게 경험되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이처럼 우리 언론이 크게 주목하지 않은 성별에 따른 재난 피해 경험이 네팔 현지 언론에서 다뤄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난을 젠더와 사회적 불평등의 관점에서 파악할 수 있는 정보와 제도적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5년 대지진 이후 재난 대응에서 네팔 정부의 성평등 및 사회적 포용(GESI, Gender Equality and Social Inclusion) 접근과 성별 분리 통계 생산이 강화됐고, UN Women·UNFPA 등 국제기구와 네팔 여성단체들도 성별에 따른 피해 자료와 현장 정보를 생산해 왔다. 따라서 재난 현장에 대한 언론의 젠더 접근은 기자 개인의 젠더감수성은 물론, 이를 뒷받침하는 젠더 전문성·성별 자료·취재 인프라 그리고 젠더데스크가 함께 갖춰질 때 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형 산불과 여객기 참사 등 재난이 반복되면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7월 시행된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시행령에는 재난 피해의 회복실태조사를 실시할 때 피해자의 성별과 연령별 특성 등을 고려하도록 하는 규정이 새롭게 포함됐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가 사망·실종·부상부터 대피와 구호, 생계, 회복에 이르는 재난의 전 과정에서 성별 분리 통계를 생산하고 그 차이를 분석하는 체계로까지 자리 잡지는 못했다. 재난 피해자의 숫자만이 아니라, 그 숫자 속에 누가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래야 재난 속 여성의 얼굴도 비로소 드러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