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로 찾아온 '손실과 피해'의 시간

[이슈 인사이드 | 환경] 박상욱 JTBC 정책부 기자

2022년 11월 제27차 유엔기후변화 당사국총회(COP27)가 열린 이집트 샤름 엘 셰이크에서 시위대가 ‘생존을 위한 1.5도’라고 쓴 손바닥을 보여주며 기후 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지구 온도 1.5도 상승 폭 억제를 외치고 있다. /AP 뉴시스

2022년 연말, 이집트 샤름엘셰이크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습니다. 그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을 강조해 왔던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였는데, 27번째 총회에선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이 주요 의제로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백만톤 줄이겠다’, ‘석탄화력발전을 20□□년까지 퇴출시키겠다’… 미래의 목표를 주로 논의하던 자리에서 책임을 다루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녹색전환의 기술 선도 국가이기도 한 선진국들은 미래 논의에서 자국의 기술적 우위와 미래 의제 주도권을 쥘 수 있지만, 반대로 과거를 돌아봄으로써 ‘Loss and Damage(손실과 피해)’를 다루는 논의에선 내세울 것을 찾기 어려운 탓입니다. 진통 끝에 COP27에선 기후변화에 취약한 개도국들이 겪는 피해를 지원하기 위한 ‘손실과 피해 기금’ 조성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습니다. 물론 개별 국가들의 구체적인 공여액 규모는 ‘빈칸’으로 남았지만요.


이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나 전기차 판매 비중 등 감축에 있어서는 선진국, 개도국 모두에서 성과가 이어졌지만, ‘손실과 피해’ 논의는 답보 상태를 이어갔습니다. 되려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는 각종 펀드에서 선진국들이 떠나거나 지원 규모를 줄이는 소식이 전해졌죠. 자국 내 경제 상황이 악화한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손실과 피해’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유럽에 전례 없는 폭염과 큰 인명피해가 발생해 다시금 주요 언론을 통해 기후위기가 환기된 데 이어 네팔과 티베트에서 끔찍한 참사가 발생한 겁니다. 수천명이 실종된 가운데 전 세계가 기다리는 ‘기적의 생환’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 만큼 참담한 상황입니다. 특히 이번 참사로 현지에서 수력발전소를 건설 중이던 한국인 9명이 실종되면서 이번 네팔 참사는 과거의 해외 빙권(氷圈) 참사들과 달리 많은 한국인이 걱정하고 무사 귀환을 고대하는 ‘우리의 일’로 다가왔습니다.

참사 초기, 기후변화의 영향을 이야기하는 전문가들의 분석에 “기후변화 탓이 아니”라는 프레이밍 시도가 곳곳에서 나왔습니다. 빙하가 녹아 빙하호가 범람하면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설명과 함께였죠. 하지만 기후변화로 녹는 것은 얼음덩어리만이 아닙니다. 암석과 자갈을 움켜쥐고 있던 영구동토층도 빙권에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는 존재입니다. 땅을 뒤덮었던 만년설이 사라지면, 토양은 같은 양의 햇빛에도 새하얀 눈보다 더 많은 열을 흡수하게 됩니다. 얼어있던 땅이 녹으면, 서로를 움켜쥐던 토석이 느슨해지는 것을 넘어 그 안에 품고 있던 메탄이 배출됩니다. 상황을 걷잡을 수 없게 만드는 ‘양의 되먹임’이 일어나게 되고요.


“네팔 국민은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입니다. 국제사회가 히말라야 생태계 보전에 함께 해주길 촉구합니다.” 시시르 커날 네팔 외교장관의 발언은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전해졌습니다. 산업혁명 이전부터 2024년까지의 국가별 누적 배출량 순위에서 네팔은 126위(약 2.3억톤). 전 세계 누적 배출량 중 0.13%에 그칩니다. ‘Top 3’ 미국(약 4348.7억톤)과 중국(약 2850.9억톤), 러시아(약 1228.1억톤)가 각각 뿜어낸 양은 전체 중·저소득 국가들의 누적 배출량 합계보다도 많습니다. 저소득 국가 합계(약 107억톤)보다 많은 누적 배출량을 기록한 나라도 26개국에 이릅니다. 한국도 그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습니다. 위 리스트엔 210여개국이 담겼습니다. 한국이 뿜어낸 207.1억톤의 온실가스는 같은 기간 전체 저소득 국가들이 뿜어낸 총량의 배에 가깝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기후변화에 있어 선진국의 책임을 외치는 것이 밖을 향한 외침이 아닌 스스로를 향하는 외침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박상욱 JTBC 정책부 기자.

그 책임을 다함에 있어 감축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이번 참사는 재해·재난의 사전 대비뿐 아니라 사후 대응에서도 기술과 자본, 인력 등 역량에 있어 선진국과 개도국 간 극명한 차이를 보여줬습니다. 1500년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역사적으로 기록된 GLOF(Glacial Lake Outburst Flood, 빙하호 붕괴홍수) 1348건 중 절반 이상이 북미(336건)와 유럽 알프스(301건), 아이슬란드(270건)에서 발생했지만, 사망자 1만2445명 중 대부분이 아시아(6300명)와 남미(5745명)에서 나온 것도 그 차이에 기인합니다. 진동 및 기온, 수위 등을 감지하는 관측시스템부터 이를 종합한 조기경보 시스템의 구축과 운영에 이르기까지 선진국들의 적응 지원이 시급한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원의 의무에서 한국은 한 번 뿜어내면 수십에서 수백년을 머무는 온실가스를 다량 배출한 국가로서 최선을 다해야 하고요. 그리고 이번 참사가 반성의 계기이자 전환의 계기가 되느냐, 혹은 기록에 머무는 참사로 남느냐… 이는 우리 스스로와 동료, 선·후배에게 달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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