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혁명수비대에 체포되며 취재하는 동안 참 힘들었는데… 다시 가보니 내심 반갑더라고요.”
강훈상 연합뉴스 기자가 이란에 도착한 건 전쟁이 시작된 지 4개월 만이었다. 4일(현지 시간)부터 일주일간 열렸던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의 장례식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전쟁 이후 국내 언론 최초로 이란 현지에 방문한 강 기자는 6년 전 테헤란 특파원 당시 경험을 살려, 전쟁 중에도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이란 시민들의 생활이 담긴 세 편의 르포 기사를 보도했다.
취재는 시작 전부터 험난했다. 장례식을 앞두고 이란 정부로부터 공식 초청장을 받았지만, 막상 비자를 받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장례식을 앞두고 이란 영공이 폐쇄될 것이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마음이 급해진 그는 캐리어를 끌고 서울 한남동에 위치한 이란 대사관 앞 커피숍에 앉아 휴대전화만 쳐다봤다. 비자가 나왔다는 전화가 오면 바로 여권을 들고 공항에 가기 위해서였다. 강 기자는 “2일 비자가 나왔단 소식을 듣고 그날 밤 이스탄불행 항공기를 탔다”면서 “초청장을 받은 언론사 중 10여 곳이 취재비자를 신청했지만 기자 중에선 저만 유일하게 비자를 받았다”고 했다.
혹시나 이란 입국 직전 영공이 폐쇄되지는 않을까, 끝까지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언젠가 한 번쯤은 다시 가보고 싶던’ 테헤란에 도착했다. 강 기자에게 테헤란은 2016년 5월부터 2020년 9월까지 4년 4개월간 특파원으로 누볐던 익숙한 도시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장례식 현장만 취재하고 돌아갈 수는 없었다. 앞서 전쟁이 시작된 후 이란 외무부와 대사관에 취재비자 발급을 수차례 문의했지만 답변받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틈틈이 특파원 시절 알아뒀던 ‘취재 스팟’을 찾아 시민들을 만났다.
6년 만에 다시 찾은 이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히잡을 벗고 다니는 여성들이었다. 특파원 시절에는 강 기자의 한국인 아내마저 히잡을 쓰고 다녀야 했을 정도로 이란 정부의 단속이 엄격했었던 터다. 그러나 다시 찾은 이란에선 다소 보수적이던 중년과 노년층까지도 히잡을 벗었고, 젊은 여성들은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심지어는 ‘배꼽티’를 입기도 했다. “3월부터 (히잡 착용) 단속을 안 하는 분위기라고 하더라고요. 이렇게라도 숨통을 틔워 준 거죠. 전쟁이 가져다준 역설적인 자유인 건데… ‘앞으로도 이런 모습이 유지됐으면 좋겠다’ 싶어요.”
한편 미국과의 전쟁 중에도 여전히 ‘코카콜라’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반미(反美) 정서가 극에 달한 이란에서 콜라를 판매하는 풍경은 기이해 보이지만, 사실 이란에서 유통되는 콜라는 원액을 밀수입해 현지에서 만드는 위조품이다. 본사의 품질관리가 전혀 되지 않기에 맛도 다르다. 강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청량감도 부족하고 단맛도 덜하”지만, 이란 사람들은 이 콜라를 즐겨 마신다.
이러한 모습에는 이란이 미국을 보는 복잡한 시각이 담겨있기도 한다. 강 기자는 “이란의 입장에선 미국이 전쟁을 일으킨 침략국이지만, 동시에 이란의 경제난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이기도 하다”면서 “가장 싫어하는 사람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양가적인 감정이 콜라를 대할 때도 드러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란 사회에 숨겨진 복잡하고 다층적인 맥락을 읽어내려면, 이란을 바라보는 국내 보도의 시각이 한층 더 넓어져야 한다고 강 기자는 말했다. 이를 위해 현장 취재는 필수라고 그는 강조했다. “물론 이란 정부가 외신기자의 취재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쟁 현장 취재를 얼마나 할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외신들도 이란의 국영방송을 모니터링해서 기사를 내보내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그렇지만 현장에선 이란 외무부를 비롯해 많은 정부 부처가 매일 기자회견을 하는데, 여기에 한국 기자가 참석해서 질문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이 때가 아니면 이란 정부에게 직접 질문하는 것이 매우 어렵거든요. 한국 기자들이 외신의 시각에서 벗어나, 현장에서 직접 소통하며 이란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만의 관점에서 또 다른 보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