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현실이다. AI가 적이냐 동료냐는 이분법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저널리즘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보고서 <2025 한국의 언론인>에 따르면 ‘직무 수행에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다’는 응답은 58.1%에 달했다. 젊을수록 그 비율은 높아져 20대는 71.6%, 입사 5년차 미만은 72.1%에 이른다. AI는 기자 업무의 기본값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숱한 기자들이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각 언론사는 자체 AI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AI 도구 사용을 장려하고 있다. AI에 거부감을 가지던 기자들 또한 사용 경험이 쌓일수록 업무 효율이 높아지는 사례를 체감하고 있다. “한 번도 안 써본 기자는 있어도, 한 번만 써본 기자는 없다”는 언론계 내부 평가는 이미 AI가 선택이 아닌 현실이 됐음을 보여준다.
AI는 이제 인터뷰 녹취를 정리하고,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며, 제목을 추천해 주는 데 머물지 않는다. 아이템 발제를 제안하고, 취재원을 추천하며, 취재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 초고까지 작성한다. 기자 개인이 자신만의 AI 에이전트를 구축해 활용하는 단계까지 기술은 발전했다. 오늘보다 내일의 AI는 더 많은 일을 해낼 것이다.
AI는 점점 ‘쓰는 기술’을 대신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기자라는 직업의 본질은 더욱 선명해지고 있다. 자료 수집과 분류, 데이터 분석, 기사 초고 작성과 교열, 제목 추천, 번역과 요약 등 반복적이고 패턴화된 업무는 상당 부분 AI가 대신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자 노동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자(記者)’는 문자 그대로 기록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저널리즘에서 중요한 것은 기록 자체가 아니다.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기록하지 않을지를 판단하는 일이다. 기자의 숙련도는 기록할 사실을 발굴하고 취재하며, 미묘한 팩트의 차이를 읽어내고, 기사 바이라인에 책임을 지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AI가 대체하지 못하는 영역이야말로 기자가 존재하는 이유다.
그렇기에 AI를 둘러싼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 ‘AI는 기자의 일을 대체하는가’가 아니라, ‘AI는 기자의 어떤 일을 대체하지 못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최근 AI 기업을 상대로 언론사들이 제기한 저작권 소송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기사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취재와 검증, 기록, 그리고 책임이라는 노동의 결과물이다. AI 시대 저작권 논쟁은 결국 취재와 기록, 그리고 그 책임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맞닿아 있다.
뉴스룸도 이제 AI를 도입할 것인가를 고민할 단계는 지났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위해 AI를 사용할 것인가다. MBC가 AI 음성 복제 기술을 도입하며 ‘설명하되 설득하지 않는다’는 원칙 아래 구성원들과 충분한 숙의를 거친 사례, SBS가 AI 시대 노동권을 보호하기 위한 단체협약을 마련한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대신할 것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저널리즘의 방향까지 결정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많이 활용하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만큼은 인간 기자의 몫으로 남겨둘 것인지를 조직 차원에서 숙의하는 일이다. 반복 업무를 줄여 확보한 시간은 더 깊은 취재와 치열한 검증, 더 나은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AI 시대 저널리즘의 경쟁력은 기술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가 아니라, 기술이 대신할 수 없는 취재와 판단, 책임의 가치를 얼마나 잘 지켜내느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