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보다 빚이 많은 나라

[이슈 인사이드 | 경제] 오찬종 매일경제신문 기자

오찬종 매일경제신문 기자.

고령화에 성장 둔화까지 맞물리면서 대한민국의 재정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장기재정전망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현재 49% 안팎에서 40년 뒤에는 150%를 훌쩍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태어나는 세대가 성인이 되기도 전에 1인당 수천만원의 빚을 짊어지게 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정부와 정치권은 세금 확충에는 소극적이고 지출 확대에는 적극적인 과거의 관성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경제 회복을 위해 재정 투입은 필요하더라도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파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여러 전문가의 중론이다.


실제로 기재부의 전망치를 좀 더 들여다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분명해진다. 2035년에는 국가채무 비율이 GDP의 70%를 넘고, 2045년에는 사실상 경제 규모와 맞먹는 수준에 도달한다. 이후 2055년에는 120%를 돌파하고 2065년에는 150% 이상으로 치솟는다.


이마저도 출산율 반등과 일정 수준의 성장률을 가정한 시나리오다. 실제 마주할 현실은 이보다 더 가혹할 가능성이 크다. 생산가능인구는 줄어들고, 연금과 건강보험 지출은 급증한다. 주요 사회보험 제도가 수십 년 내 고갈될 것이라는 전망도 연이어 제기된다.


그럼에도 내년 정부 예산은 728조원으로 올해보다 54조원 넘게 늘어난다. 사상 최대 증가 폭이다. 국가채무는 1400조원을 넘어 GDP 대비 비율이 처음으로 50% 선을 넘어설 전망이다. 재정 적자 비율은 4%에 달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3% 관리 기준을 웃돈다. 정부는 인공지능(AI) 산업 육성, 연구개발(R&D) 확대 등 미래 투자를 내세우지만 동시에 여러 선심성 사업도 대거 포함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적자 기조가 단년도에 그치지 않고 향후 임기 내내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대로라면 2030년 현 정부 임기 말 국가채무는 GDP의 60%에 육박한다.


빚으로 충당한 확장 재정은 곧바로 금리 상승과 신용등급 하락 위험으로 돌아온다. 국채 발행이 늘면 채권 가치는 떨어지고, 가계와 기업의 금융비용이 불어난다. 실제로 유럽의 재정 모범국으로 꼽히던 프랑스조차 최근 재정 적자를 방치하다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결국 IMF 구제금융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프랑스의 채무 비율은 114% 수준인데 우리의 장기 전망은 이를 훨씬 웃돈다.


‘돈 풀기’가 유권자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와 비슷한 환경인 일본의 최근 사례는 분명한 경고가 된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7월 참의원 선거에서 물가 대책 명목으로 1인당 현금 2만 엔 지급을 내세웠다가 참패를 당했다. 자민당은 7월 선거의 참패 이유를 ‘현금 살포 공약에 국민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이라며 자체 분석 보고서를 냈다. 국가채무가 GDP의 두 배를 훌쩍 넘는 상황에서 현금 살포 공약을 내놓자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일본 국민은 재정 중독 정치에 단호한 회초리를 들었다. 한국 정치권도 재정 방만에 대한 자성이 없다면 국민에게 장기적인 지지를 얻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달콤한 지출 유혹이 아니라 뼈를 깎는 개혁이다. 실효성 있는 재정 준칙을 법제화해 지출 증가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연금·의료·노동 등 전 분야에 걸친 구조개혁도 더 미뤄선 안 된다. 지속 가능한 재정 체질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재정은 미래 세대의 짐으로 전가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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