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최상부 구조 파헤쳐야… 안 그러면 '제2의 윤석열' 나와"

[김성후의 The Journalist] (7)우한울 KBS 기자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나고 일주일 뒤, 우한울 KBS 기자는 전남 무안으로 무작정 내려갔다. 취재 방향을 잡고 움직였다기보다는 무모하게 덤빈 편이었다. 그는 무안공항 주변을 돌아다니며 제주항공 2216편이 포착된 영상을 찾아 나섰다.


“KBS 광주총국 김애린 기자와 퇴직자분들이 희생자 명단에 있는데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회사 차원에서 취재를 규모 있게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계엄·탄핵 정국으로 여의치 않았어요. 나라도 하자고 생각했죠. 항공 참사 취재 경험이 없던 터라 해보자는 것도 있었고, 국토교통부의 발표만 받아쓰면 진실 규명이 제대로 될까라는 막연한 의구심도 있었어요. 성과가 없어도 시도만으로 의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9일 여의도 KBS에서 우한울 기자가 친일파 이해승이 서대문구 홍은동과 응암동 일대에 보유한 땅을 가리키며 친일파 재산 추적 보도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


사고 초기 2216편의 마지막 2분 40초를 찍은 휴대전화 촬영 영상이 존재한다는 제보를 받은 것도 취재를 마음먹은 이유였다. 9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만난 우 기자는 “누군가 그 영상을 촬영해서 갖고 있다는 것만 아는 상태였다”며 “그 영상을 확보하고, 사고기의 비행 모습을 담은 영상을 모은다면 진상 규명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차로 무안을 다녀온 그는 오정현 기자, 김민준 촬영기자와 팀을 이뤄 다시 현장으로 향했다. CCTV, 누군가 촬영했을 수도 있는 휴대전화 영상, 차량 블랙박스 등 영상 기록 위주로 취재했다. CCTV 저장 기간이 최대 한 달이라 1월 내내 무안공항 주변을 다니며 영상을 하나씩 확인했다. 그런데 정부 당국이나 언론은 사고기의 마지막 비행을 기록한 CCTV에 주목하지 않았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2216편 CCTV 영상
1월11일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가 보도참고자료를 냈다. 사고기가 로컬라이저에 충돌하기 직전 4분7초 동안 블랙박스 기록이 멈췄다는 내용이었다. CCTV를 아무도 찾지 않는데, 블랙박스에 기록이 없다니 취재에 확신이 들었다. “영상은 기록 관점에서 볼 때 그 자체로 팩트고, 취재팀이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거죠. 독자성이 명확해지는 거라 더 집중했습니다.”


취재팀은 영상 확보에 더 악착같이 매달렸다. 무안공항 반경 7km 주변을 샅샅이 뒤지며 사고기가 포착된 영상 35개를 모았다. 선착장 CCTV에서 무리 지어 이동하는 가창오리 떼와 비행기가 충돌하는 영상을 확인했고, 설득 끝에 마지막 2분40초가 촬영된 영상도 확보했다. 시간순으로 영상을 배열하고 원근 투시도법을 활용한 영상 측량으로 사고기의 3차원 좌표를 하나하나 지도에 새겼다.


이렇게 복원한 제주항공 2216편의 마지막 궤적은 4월29일 <시사기획 창> ‘2216편 추적보고서 1부-4분7초’를 통해 최초 공개됐다. 블랙박스가 놓친 ‘4분7초’는 2216편 기장이 조류와 충돌로 인한 ‘메이데이’(조난신호)를 외친 후 복행을 통보한 무렵인 오전 8시58분50초부터 사고가 발생한 9시2분57초까지를 말한다. 안영아 편집감독은 해당 영상을 울면서 편집했다. 방송은 블랙박스에 기록되지 않은 2216편의 마지막 비행 모습을 CCTV 영상 그대로 보여준다.


“처음엔 블랙박스가 기록하지 못한 마지막 비행 궤적을 역동적으로 보여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안 감독이 ‘CCTV 그대로의 힘이 있다. 그때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자’고 하더군요. 해놓고 보니 맞더라고요. 이번 취재에서 CCTV 영상이 기록이고 팩트고 진실이잖아요. 그 자체로서의 진실, 그게 힘이 있다는 걸 함께 작업하면서 깨달았죠.”


5월6일 방송한 ‘2216편 추적보고서 2부-치즈의 경고: 탑승객 생존조건’에선 항공 안전망의 근본적 허점들을 추적했다. 1·2편을 제작한 우 기자는 추적보고서의 최종 결론을 이렇게 밝혔다. “2216편 참사는 수백 건의 경미한 사고들을 방치하고 공항 곳곳에 도사렸던 위험요소를 오랫동안 외면한 탓에 벌어진 오래된 재앙이었다.”

우한울 기자가 제주항공 2216편이 포착된 35개 영상을 분석한 영상 측량 감정 보고서를 컴퓨터 화면에 띄우고 설명하고 있다. /김성후 선임기자

◇탐사보도 제대로 하고 싶어 KBS 이직
우한울 기자는 대학을 졸업한 2002년 4월 세계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교양 PD에 관심을 가졌지만 높은 취업문에 기자로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그가 기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건 2006년 특별기획취재팀에 합류하면서다. 채희창 팀장, 김형구·나기천·박은주 기자와 함께 △정부 싱크탱크 대해부(2006년 10월) △주민등록증에서 사라진 사람들(2006년 12월) △신약 임상시험의 충격적 진실(2007년 8월) 등 3건의 탐사보도를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탐사취재 경험을 쌓았다.


그는 2008년 6월 KBS로 이직했다. 당시 KBS는 ‘외환은행 매각의 비밀’, ‘고위 공직자, 그들의 재산을 검증한다’ 등 잇단 탐사보도로 명성을 떨쳤다. 김용진·이영섭·최문호 등 뛰어난 기자들이 데이터 분석 기법과 현장 취재를 통해 탐사 저널리즘을 다시 쓰고 있던 때였다. 탐사보도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그의 눈에 KBS가 들어왔다.


KBS에 입사하자마자 그런 기대가 산산이 깨졌다. 그해 8월 KBS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정연주 사장이 강제 해임됐다. “권력의 추를 따라 KBS가 왔다 갔다 한다는 걸 몰랐어요. 탐사보도팀 보고 KBS에 왔는데 없어지니 황당했죠. 그래도 제가 하고 싶은 기획취재를 소소하게 하며 적응했습니다.” 그는 ‘소소한 보도’라고 표현했지만 ‘미 쇠고기 도축장 특별점검 축소 발표’(2008년 8월), ‘고 장자연 친필문건 단독 입수’(2009년 4월) 보도는 파장이 컸다.

◇언론사 사주로 변신한 자본가들 추적
그의 취재 이력 가운데 언론사 사주의 비리를 추적한 보도가 특별하다. 우 기자는 2019년 5월 ‘시사기획 창-아시아경제 최상주의 비밀’에서 아시아경제 사주이자 KMH 아경그룹 최상주 회장을 둘러싼 성접대 의혹과 150억원 횡령·배임 의혹을 제기했다. 최 회장은 자신의 성접대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며 KBS를 상대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법원은 KBS 방송 내용이 진실이 아니라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최 회장은 보도 직후 아시아경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2022년 5월엔 서울신문의 호반건설 관련 기사 삭제 사건을 다뤘다. 서울신문은 2019년 7~11월 ‘호반건설 대해부 시리즈’를 통해 김상열 회장 일가의 경영권 편법 승계, 공공택지 ‘벌떼 입찰’과 오너 2세 회사에 일감 몰아주기 등을 보도했는데, 호반건설이 서울신문 대주주가 된 후 3개월 만인 2022년 1월 관련 기사 57건이 삭제됐다. 우 기자는 시사기획 창 ‘누가 회장님 기사를 지웠나’에서 호반건설 관련 비판 기사 삭제 경위를 추적하며 삭제된 기사를 재검증했다. 호반과 김상열 회장은 보도 직전 법원에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이 보도가 나가고 거액의 손해배상소송을 당했다. 김 회장과 호반건설은 “허위 사실을 보도해 사회적 평가 내지 신용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피해를 보았다”며 KBS와 우 기자를 상대로 정정보도 및 5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호반은 앞서 일감 몰아주기 의혹 등을 조사해온 공정거래위원회가 호반에 대한 제재에 나설 것이라는 9시뉴스 리포트와 관련해 KBS와 정새배 기자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냈다. 특히 정 기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금액에 대한 월급 가압류까지 걸었다. 당시 언론계는 호반이 후속 보도를 막으려고 거액의 소송을 냈다고 비판했다.


호반은 그해 11월 소송을 취하했다. 우 기자는 호반이 소송을 취하했다는 소식을 나중에 변호사에게 들었다. 보도본부장과 서울신문 부회장의 식사 자리가 있었고, 거기서 취하가 결정됐다는 거였다. 취하 과정이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우 기자는 보도본부에 호반건설의 소송이 부당했고, 취재 봉쇄 소송을 냈다가 취하하는 행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비슷한 취지의 보도자료가 나와서 마무리됐죠. 좀 부끄러운 얘기지만 제 입장에서도 요식이었죠. 하지만 식사 자리에서 그런 결정이 이뤄졌고, 제작진과 상의도 없이 결과만 통보했어요. 그렇게 마무리되는 건 옳지 않다고 봤습니다.” 우 기자가 재검증했던 호반건설의 ‘벌떼 입찰’은 팩트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2023년 6월 호반건설에 과징금 608억원을 부과했다.


언론사 사주의 비리 취재를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었다. 권력과 자본의 거래, 그 둘을 잇는 여러 가지 브로커 생태계들이 있는데, 언론도 하나의 중요한 축이었다. 그것이 보여주는 결과가 성공한 자본가들이 언론사 사주로 변신한 것이었다.


“한국 사회에서 성공한 자본가는 자기 보호 체계, 조력자, 울타리를 갖고 있어요. 그것을 감시하는 게 언론의 일인데, 공교롭게도 언론 부분은 감시를 안 받는 영역인 거죠. 지역의 경우 건설자본이 언론을 흡수했고, 서울에 있는 신문들도 미디어 환경 변화, 수익 구조 악화가 겹치며 인수해 달라고 손 내미는 상황이 돼버린 거잖아요. 큰 흐름을 막을 수 없다 할지라도 노골적인, 선 넘은 거래가 있다 보니 제가 취재를 한 것 같아요. 언론계 쪽 얘기들이 또 들릴 것 같은데, 당연히 취재해야죠.”

사회연결망 분석을 활용해 보도한 이명박 정부 국군기무사령부의 2012년 총선 개입 의혹(2018년 2월7일 KBS 뉴스9).

◇취재하면서 깨우친 탐사보도 기법
23년차 기자로 지내며 보직은 과학팀장(2019년 11월~2020년 11월)이 유일하다. 탐사보도 경력은 세계일보에서 2년, KBS 탐사보도부 3년 2개월, 시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시사기획 창까지 합하면 대략 7년쯤 된다. 기획취재나 탐사보도를 지향하며 취재했고 관련 부서가 생기면 손들고 자원했다.


그는 탐사보도를 각 잡고 공부하지 않았다. 기무사 총선 개입 트윗, 전세 사기단 추적 보도를 하면서 사회연결망 분석(SNA)을 활용했고, 2216편 추적보고서를 취재하며 영상 측량 기법을 알게 됐다. 경험하면서 깨우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변형되고 숙성된다고 그는 말했다. 실제 데이터 분석을 하면서 데이터를 해석하는 툴에 익숙해지고, 그러면서 어떤 관점을 끌어내는 안목이 쌓인다고 했다.


과거에 모아둔 데이터가 빛을 발하기도 했다. 국민일보는 2021년 5월 ‘당신의 전세금 안녕하십니까’라는 기획을 통해 서울 강서구와 관악구, 은평구 등 수도권 일대 70여명의 빌라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세 모녀 전세투기단’을 추적했다. 시사기획 창에 근무하던 우 기자의 눈에 이 보도가 들어왔다.


그는 묻혀 있던 전세 사기의 구조가 빙산의 일각처럼 드러난 것으로 보고 기초 취재를 시작했다. 국회를 통해 세 모녀가 보유한 빌라 주소를 모두 확보하고, 전세 사기의 시기·장소·방식과 조력자들(건축업자, 부동산중개인, 분양대행사)의 실체를 파악했다. 당시 다른 프로그램 제작으로 본격 취재를 하지 못했다가 전세 사기 문제가 심각해진 2022년 12월에 추가 취재를 진행했다. 그와 KBS 전세 사기 특별취재팀은 이듬해 2월 초까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힌 ‘빌라왕’ 배후조직의 실체를 드러냈다.

사기 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보이는 ‘빌라왕’ 176명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한 보도(2023년 3월9일 KBS 뉴스9).

◇"제대로 써서 조금이라도 바꾸면 잘한 것"
그의 저널리즘은 구조적 문제를 드러내는 걸 지향한다. 기자는 여기저기 묻혀 있고 은폐된 구조를 어떤 기록과 파편들로 연결하고 파악해서 끊임없이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치권력, 법조계, 자본가, 행정권력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권력 최상부의 부패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고 했다. “근본적인 토양을 개선하지 않으면 제2의 윤석열, 제2의 김건희, 제2의 계엄사태가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인터뷰 중에 “2216편 추적보고서가 평생 못 잊을 보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며 “시청자 눈길도 끌고, 할 얘기도 하고, 완결성도 갖추고. 제가 지향하는 삼박자가 다 맞아떨어지는 취재였다”고 했다.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취재’의 의미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 인터뷰 이후 다시 물었더니 이렇게 답이 왔다.

제주항공 2216편의 마지막 비행을 최초 공개한 ‘2216편 추적보고서 1부-4분7초’의 방송 화면(2025년 4월29일 KBS ‘시사기획 창’).

“일반적으로 구조적 문제를 심층 분석하는 기사는 전문적이고 복잡해서 대중의 관심을 끌기 어렵습니다. 이번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취재는 ‘사고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충돌 시각은 언제인지’, ‘조종사 과실은 있었는지’ 등 대중의 관심사를 충실히 취재하면서도 동시에 항공안전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까지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이달의 기자상을 모두 9번 받았다. 바뀐 게 없고, 세상에 특별한 영향력도 끼치지 못했는데 그럴싸해서 평가받은 부분도 있었다고 겸손해했다. 기자로 살아가는 철학을 물었더니 고 김대중 대통령의 ‘정치는 반걸음만 가는 것’이라는 말을 꺼냈다.


“한걸음 가려면 못 가고, 반걸음만 가도 역으로 보면 잘했다는 거죠. 저도 기자를 해보니 알겠더라고요. 한 번의 기사로 깡그리 다 바꾸고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데 늦더라도 제대로 된 기사를 써서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면 잘한 것이다.”


우 기자가 일하는 사무실 한쪽 벽면엔 옛날 일제가 만든 지적 원도를 이어붙인 지도가 붙어 있었다. 노란색 형광펜으로 색칠한 부분은 친일파 이해승이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과 응암동 일대에 보유한 땅인데, 지금은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친일파들이 100년 전 갖고 있던 땅이 어떻게 개발됐는지, 이 땅을 상속받은 후손들이 얼마를 챙겼는지 추적하고 있다. 8월19일 방송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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