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당시 KBS가 사전에 ‘계엄 방송’ 준비 지시를 받았다는 의혹이 구체화하고 있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 조사에서 KBS를 직접 지칭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에서 계엄 선포 직전 일부 국무위원이 비상계엄 계획을 반대하자 윤석열 대통령이 “22시 KBS 생방송이 이미 확정돼 있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진다.
앞서 해당 의혹을 제기했던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국무위원을 통해 정황이 확인됐다”며 사측에 진상조사를 촉구했으나, 아직 사측의 별다른 해명은 없는 상황이다. 1월30일 이 전 장관의 해당 진술을 단독 보도<사진>한 MBC는 “윤 대통령의 ‘22시 KBS 생중계’ 언급은 앞서 언론노조 KBS본부에서 제기한 ‘계엄방송 준비 사전 언질’ 의혹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했다.
KBS본부는 지난해 12월4일 성명에서 최재현 당시 보도국장이 비상계엄 선포 당일 발표 2시간 전부터 대통령실로부터 ‘계엄 방송’을 준비하라는 언질을 받았다는 소문이 돈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차원에서도 해당 의혹과 관련 현안질의를 진행했으나, 의혹 당사자인 최 전 국장은 현안질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의혹이 불거지고 이틀 뒤 최 전 국장은 입장문을 내어 “대통령의 발표 2시간 전 대통령실 인사 누구와도 통화한 사실이 없다. 따라서 실제 발표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어떤 내용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며 의혹을 부인했으나 KBS본부는 그해 12월9일 최 전 국장과 박민 당시 사장, 성명불상의 누군가를 방송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부당한 방송편성 개입 지시를 이행한 행위”이고, “관계자들의 공통된 증언 등을 통해 상당히 높은 신빙성이 인정된다”는 이유에서다. 해당 사건은 현재 경찰청 반부패 수사대에서 수사 중이며 고발인 조사까지 진행됐다.
이번엔 계엄 선포 당시 논의에 참여한 국무위원의 경찰 진술에서 ‘KBS 생방송 확정’에 대한 언급이 구체적으로 나오며 과거 제기된 의혹이 소환된 건데, KBS본부는 1월31일 추가 성명을 내어 비상계엄 생방송 직전 당시인 지난해 12월3일 저녁 상황을 전했다. 이날 최 전 국장은 퇴근했다가 KBS ‘뉴스9’ 방송 전 급하게 회사로 들어와 대통령실 담화가 예정됐다며 준비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KBS본부는 성명에서 “이 전 장관의 경찰 진술은 최 전 국장의 주장을 무색케 한다. 당시 대통령이, 그리고 국무위원이 ‘22시에 KBS 생방송 예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라며 사측에 당시 생방송 결정 과정 등을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계엄 당일 윤 대통령 담화를 생중계한 방송사가 KBS만은 아니지만, ‘사전 언질’ 의혹이 끊이지 않고 특히 당시 국무위원 입에서 KBS에 대한 언급이 나온 만큼 설명이 필요한 부분들이 남는다. 특히 당시 KBS 보도국장이 생중계 연결 요청 그 이상의 내용을 들은 건지, 언제, 누구로부터 ‘지시’를 받았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관련해 KBS 보도본부 측과 사측은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이번 의혹과 관련해 KBS본부가 요구한 진상조사를 추진하려는 움직임도 아직은 보이지 않고 있다. 한편, 박민 전 사장 체제에서 보도국장을 지낸 최 전 국장은 박장범 사장 취임 이후인 1월 자회사인 KBS 미디어 감사로 임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