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9일 아침은 여느 때와 같았던 일요일 출근날이었다. 지역 주재 기자 선배로부터 무안에서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전화를 받기 전까진. 좀처럼 믿기질 않고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되물었더니, 무안국제공항에서 여객기 추락 사고가 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데스크에게 보고한 후 무안공항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연락이 닿은 다른 기자들도 정확한 상황은 모르지만 우선 현장으로 간다고 입을 모았다. 이미 도착했다는 한 후배 기자는 예삿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사이렌을 울리며 무안공항으로 질주하는 구급차가 연이어 보이면서 지금 가는 곳이 ‘참사 현장’임을 직감했다.
무안공항에 도착해 사람이 많은 곳으로 무작정 달려갔는데, 2층 1번 게이트 부근에서 종이를 돌려 보며 무언갈 찾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평소 같은 취재 현장이었다면 다가가 무슨 일인지 물어봤겠으나 그러지 않았다. 차디찬 맨바닥에 주저앉아 눈물을 터뜨리는 이들이 탑승자의 가족이 아니면 누구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이들을 따라 이동한 관리동에서 소방 당국이 구조된 2명을 제외한 탑승객 전원 사망한 것 같다는 비보를 전하면서 약 3주간의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보도가 시작됐다.
참사 첫날에 대한 기억은 가장 오래됐어도 제일 생생하다. 설렘 가득한 재회의 공간에서 갑작스레 이별을 맞이한 유가족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 비통해했다. 이를 보고선 유가족들을 대상으로 취재에 나설 수 없었다. 나의 언행이 2차 가해로 느껴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번 참사가 기자로서 처음은 아니었지만, 유가족들을 상대로 어느 정도까지 취재에 임할지 선을 정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참사 현장에서 언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컸는데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첫날이 흘러갔다.
본격적인 수습 국면을 맞은 참사 이틀째부터 현장의 시간은 더욱 빠르게 지나갔다. 수습 당국은 신원 확인된 시신을 유가족들에게 하나둘씩 인도했고 조사 당국이 참사 경위 등 설명에 나서면서 취재 방향도 수습 상황과 조사 내용으로 압축됐다. 하지만 유가족이 머무는 ‘쉼터’마다 촬영 금지 표식이 붙을 정도로 취재 상황은 점점 더 여의치 않아져 이곳에서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그러던 중 맞이한 새해 첫날. 희생자 179명의 신원이 모두 확인됐고 유가족들은 처음으로 참사 현장을 찾았다. 짧은 참배를 마치고 돌아온 유가족들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는 쉼터 바깥까지 다 들릴 정도로 떠나간 가족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통곡했다. 그런 유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했던 건 같은 아픔 속에 있는 서로와 조금이라도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떡국 대접부터 청소 등 온갖 궂은 일을 도맡은 자원봉사자였다.
을사년 시작부터 무안공항에 잇따른 추모객의 발걸음은 희생자 대부분이 가족 품으로 돌아간 1월5일을 넘어서도 이어졌다. 당초 예상보다 빨리 유해 인도가 마무리되면서 유가족들은 정부에 감사함을 전했고 장례를 마친 후 무안공항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때부턴 조사 당국의 움직임에 촉각을 기울였으나 참사 여객기의 비행기록장치(FDR)와 음성기록장치(CVR) 모두 충돌 4분여 전부터 먹통이었다는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의 발표에 결론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무안공항을 찾은 건 합동 추모식이 엄수된 1월18일이었다. 엄숙한 분위기에서 시작된 추모식은 금세 눈물바다가 됐다. 유가족들이 하늘의 가족에게 닿길 바라며 눈물로 쓴 편지를 낭독할 때 취재 기자들도 눈물을 쏟아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던 터라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왜 그랬을지 생각해 봤다. 그 이유는 취재기를 쓰는 지금까지 잘 모르겠으나 지난 3주간 답을 내리지 못했던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알 수 있었다.
기자에겐 기록의 의무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현장으로 가고 취재하며 보도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유념할 건 취재 대상에 대한 존중과 공감이 아닐까 싶다. 인명 피해 규모가 컸던 만큼 참사 첫날부터 전국 각지에서 기자들이 몰려왔고 취재 경쟁이 붙으면서 재난보도준칙 관련 잡음도 일었고 유가족들이 항의하는 일도 잇따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일은 없어졌는데, 기자들 스스로 유가족에 대한 선을 지켰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래서였을까. 합동 추모식 말미에 유가족들은 배려해 준 기자들에게도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답을 찾기 위해 밀어낼 때도, 당길 때도 있기에 취재원과의 관계가 늘 좋을 순 없다. 그렇지만 예기치 못한 일로 가족을 잃은 이들에 대해선 기자 이전에 같은 사람으로서 슬픔과 고통을 나누고 위로하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선배 기자까지 세상을 떠난 참사라서 안타까움이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희생자 179명 모두 영면하길 바라며 철저한 원인 규명과 엄한 처벌로 이 같은 참사가 정말로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