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밤과 언론

[언론 다시보기]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정치철학자

“기자님 계엄의 밤, 현장에서 너무 수고 많으셨어요. 현장에서 직접 상황을 목격하며 엄청난 공포와 불안을 느끼셨을 거라 생각해요. 그곳에서 현장을 지키며 사실을 지켜낸 기자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 드립니다.”


“아이구, 박사님!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다가 울컥,,) 정말 이상하고 말도 안 되는 정권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미치광이일 줄이야...ㅠ 마음과 의지, 잘 다잡아보겠습니다!”

국회 본회의에서 비상계엄 해제를 의결한 4일 새벽 계엄군 병력이 국회에서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계엄의 밤, 국회의사당에 있었던 젊은 기자 한 분과 주고받은 메시지다. 계엄이 해제되고 열흘 뒤쯤 기자를 만나 그 밤에 너무 무서웠겠다고, 그 불안과 공포를 이겨내고 현장을 취재하고 알려줘서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자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사실 현장에선 불안과 공포를 느낄 새도 없었어요. 그저 지금 이 현장을, 사실을 전달해야만 한다는 마음뿐이었어요. 아마 기자들 대부분이 그랬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 돌아보니 그 순간이 너무 무서운 거예요. 하지만 그때는 지금 이 현장을 지켜야만 한다는 마음, 단지 그것뿐이었어요.”


한나 아렌트는 언론이 지켜내는 사실을 ‘사실적 진리’(factual truth)라고 표현한다. 사실과 진리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진리의 시제는 언제나 현재형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똑같이 ‘~이다’라는 형식으로 표현된다. 반면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 시제가 변한다. ‘~이다’인 표현이 시간이 지나면 ‘~이었다’로 변한다.


이는 단지 철학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가 사실로 알고 있었던 일이 때로 거짓으로 판명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에서 쓰이는 ‘오보’란 표현에서 ‘사실의 유동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언론은 이런 ‘유동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또 확인해서 마치 바뀔 수 없는 진리처럼 만드는 역할’을 맡고 있다.


언론이 지켜낸 이런 ‘사실적 진리’는 공적 토론의 토대가 된다. 공적 토론에 임하는 이들이 서로 다른 사실을 토대로 논의한다고 생각해보자. 서로 간에 합의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민주정체가 지향하는 합의는 언제나 서로가 공유하는 사실의 기반 위에서 형성된다. 언론은 그런 사실을, 우리 삶의 최전선에서 지키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어떤 경우, 우리는 그 사실을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야만 한다. 때로는 그 사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할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전쟁에서 사실을 취재하는 일이 그렇다. 이 일의 위험성을 알고 있기에 국제법으로도 종군기자들에게 강압을 행사하거나 발포하는 일이 금지되어 있다. 이를 어기면 전쟁 범죄가 된다.


하지만 법의 존재가 사실을 지키는 언론의 안전을 온전히 보장하진 못한다. 무도한 권력이나 세력이 법마저 무시하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이다. 국제기자연맹(IFJ)에 따르면, 2023년에만 언론인 94명이 전쟁의 참상이나 권력의 부정을 보도하는 과정에 목숨을 잃었다. 감옥에 갇힌 기자만 400여 명에 달했다.

김만권 경희대 학술연구교수.

계엄의 밤, 우리가 모두 국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현장에서 물러나지 않았던 수많은 언론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몰려드는 상황에서, 기자들은 물러나라고 협박하는 상황에서, 그들에 맞서 카메라를 들고 더 나아가 긴급한 보도를 통해 현장을 지켜낸 언론인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회뿐만 아니었다. 국방부 기자실에 들어온 군 경찰은 “안 나가면 테이저건(전기 충격용 권총)을 쏠 수도 있다. 특임대가 투입될 수도 있다”고, 기자들이 이에 응하지 않자 “강제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협박을 가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끝까지 물러나지 않았다.


‘현장을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고, 기자들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라는, 국회를 지키던 젊은 기자의 말이 떠오른다. “미안해. 나도 비상계엄은 처음이야”라는 국방부 기자실 선배 기자의 말도 떠오른다. 이들의 용기가 무도한 계엄의 밤을, 논란이 없는 ‘사실적 진리’의 밤으로 만들었다. 계엄의 밤, 현장 곳곳에서 공통의 사실을 지켜낸 모든 언론인의 용기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2025년 새해가 시작된다. 민주정체에서 서로의 입장은 달라도, 지켜내야 할 사실은 공통적이어야 한다. 그 임무를 언론이 맡고 있다. 올해도 두 손을 모아 잘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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