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전 10패. 방송통신위원회가 MBC 사장 해임을 위해 사전 정지 작업으로 벌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교체 작업이 법원에서 연전연패를 당하다 기어이 10번째 패배까지 기록했다. 앞서 3건의 가처분 소송에서 진 뒤 항고에 재항고를 거듭, 대법원까지 가서 패소 확정을 받아든 방통위는 이번엔 본안소송에서 첫 패배의 쓴맛을 보고야 말았다. 이후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취임 당일 강행한 방문진 새 이사 임명 처분이 법원에 의해 정지된 것까지 포함하면 패배의 기록은 더 늘어난다. 그리고 이 숫자는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서울행정법원이 19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과 남영진 전 KBS 이사장이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 소송에서 연달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방통위가 지난해 8월14일 남영진 당시 KBS 이사장 해임건의안을 의결, 윤석열 대통령이 당일 해임안을 재가한 것과 같은 달 21일 방통위가 권태선 이사장을 해임한 처분 모두 부당하므로 무효라는 것이다.
이로써 권태선 이사장은 방통위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전승 기록을 이어가게 됐다. 권 이사장은 지난해 해임 당일 방통위를 상대로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바로 효력정지 집행정지도 신청했다. 3주 뒤, 법원은 집행정지 인용 결정을 내렸고, 이에 방통위가 항고하고 재항고까지 했으나 올 3월 대법원에서 원고 승소가 최종 확정됐다. 권 이사장은 자신이 해임되고 1주일 뒤 후임으로 임명된 김성근 이사의 임명을 취소하는 소송과 집행정지도 바로 신청했는데, 이 건 집행정지 역시 받아들여지며 올 3월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됐다. 권태선 이사장과 비슷한 시기 해임된 김기중 이사도 법원의 해임처분 집행정지 판결을 받아냈고, 역시 3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 바 있다.
반면 남영진 이사장은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되어 바로 직을 잃었는데, 본안소송 첫 판결에서 반전 승리를 거뒀다. 남 전 이사장은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지난해 9월 가처분 심리를 진행한 재판부는 “해임처분으로 인해 남영진 이사장이 KBS 이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불이익을 입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사 직무는 의결기관으로서 정책적 판단을 하는 공적인 부분이 더 강조된다”면서 “해임처분을 취소할 것인지 여부는 본안소송에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1년 4개월 만에 해임 취소 판결이 나왔으나, 남 전 이사장은 복귀할 수 없다. 이미 임기가 8월로 만료됐기 때문이다. 권태선 이사장이 집행정지 인용 뒤 바로 업무에 복귀, 올해 8월12일로 임기가 끝난 뒤에도 이진숙 체제 ‘2인 방통위’의 위법적인 방문진 후임 이사 임명이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리면서 계속 직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KBS 내부에서 “지연된 정의”라며 짙은 아쉬움을 나타내는 이유다.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는 19일 성명을 내어 “법원이 남 전 이사장의 해임에 대해 서둘러 집행정지를 인용했다면 공영방송 KBS가 처한 현실은 많이 달라져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남 전 이사장이 해임되고 1주일 뒤, 방통위는 후임에 황근 보궐이사를 추천하며 여야 5대6 구도를 6대5로 역전시켰고, KBS 이사회는 여권 측 서기석 이사를 이사장으로 호선한 뒤 바로 김의철 KBS 사장 해임을 추진했다. 그리고 보궐 사장 선임 과정에서 여권 측 이사와 사장 후보가 사퇴하는 등 파행이 벌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해 10월13일 ‘대통령 술친구’로 알려진 박민 후보가 이변 없이 사장에 내정됐다. 남 전 이사장 해임부터 박민 사장 내정까지 딱 60일이 걸렸다.
이후 KBS에서 벌어진 일은 “파우치 대담, 세월호 10주기 다큐 불방, 광복절 방송 참사, 땡윤방송” 등으로 짧게 요약된다. 권태선 이사장의 해임처분 취소소송과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면 MBC에서도 비슷하게 반복됐을 일들이다.
“KBS 이미 많은 것 잃어…방송장악 진상 명명백백 밝혀야”
하지만 KBS와 MBC는 전혀 다른 길을 갔고, ‘국민이 등 돌린’ KBS는 메인뉴스 시청률마저 MBC의 반 토막이 나며 참담한 지경에 내몰렸다. KBS본부는 “남 전 이사장의 해임 이후 1년 KBS는 많은 것을 잃었으며, 신뢰 상실이라는 복구하기 힘든 피해를 여전히 입고 있다”며 따라서 “이번 판결은 단순히 남영진 전 이사장의 해임 취소 정도의 의미로 끝나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내란수괴 윤석열 정권이 자행한 방송장악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혀내고, 이에 관여한 방통위와 공영방송 내외부의 방송장악 조력자들을 철저히 조사하고,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국정조사를 주장하고 나섰다. 언론노조는 20일 성명에서 “윤석열이 취임 직후부터 벌인 언론 자유에 대한 내란은 이제 종식시킬 때”라면서 “국회는 2023년 김효재 권한대행 이후 이진숙 위원장의 탄핵 이전까지 내려진 방통위의 모든 의결 사항의 위법성을 따질 국정조사를 즉시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국회는 신속한 방송법 개정을 통해 공영방송이 다시는 정치적 장악과 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독립성을 보장하라”고 강조하며 방송법 개정은 물론 방통위를 비롯한 미디어 규제 체제 전반을 개혁할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에 적극 나설 것을 주장했다.